엄혹한 시기 영롱한 별처럼 살다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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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혹한 시기 영롱한 별처럼 살다간 시인
  • 김영조.이윤옥
  • 승인 2009.12.06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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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속 우리 문화 톺아보기>④윤동주 교토 시비 2편
동지사대학 윤동주 시비 옆에 나란히 선 정지용 시비

동지사대학 이마데가와 교정 윤동주 시비 옆에 세워진 정지용 시비 ⓒ 김영조
동지사(同志社, 도시샤)대학 이마데가와 교정 윤동주 시비 옆에는 “향수”라는 시로 우리에게 친근한 시인 정지용의 시비도 있다. 정지용 시비는 윤동주보다 10년 늦은 2005년 12월 18일에 세워졌다.

월북작가라 해서 한동안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던 정지용은 그의 시 “향수”를 노래한 성악가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에 의해 널리 알려졌고, 이제 그의 모교 동지사대학 교정에 윤동주 시비와 나란히 서서 오붓한 이야기라도 나누는 듯 다정하다.

시비엔 정지용이 1924년 쓴 “압천(鴨川)”이란 시가 새겨져 있다. 압천은 동지사대학 이마데가와 교정 근처에 있는 가모가와 강의 한자 표기이다. 윤동주 시비를 찾아 나섰던 날 저녁 우리 일행은 가모가와 강변을 걸었다. 한강처럼 강폭이 넓지는 않지만 한여름 밤의 더위를 식히려는 듯 많은 교토 시민들이 강변에 나와 도심 속의 또 다른 운치를 즐기고 있었다.

화려한 네온사인의 도심 불빛을 그대로 받아내어 반짝이며 흐르는 가모가와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다보는 우리 가슴에 윤동주와 정지용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스치운다. 정지용도 고국의 향수를 느끼며 이 강가를 거닐었을까?

저녁밥을 해먹고 산책 나온 강가에는 가족단위의 모습이 많았고 아베크족들도 꽤 눈에 띄었다. 이곳을 걸었을 정지용과 윤동주와 그리고 많은 조선 청년들은 고국의 가족을 떠올렸을 것이다. 

정지용 시인 ⓒ 동지사대학
“鴨川 十里ㅅ벌에

해는 저물어...저물어...


날이 날마다 님 보내기

목이 자졌다...여울 물소리....


찬 모래알 쥐여 짜는 찬 사람의 마음,

쥐여 짜라. 바시여라. 시원치도

않어라. 


역구풀 우거진 보금자리

뜸북이 홀어멈 울음 울고,


제비 한 쌍 떠ㅅ다,

비맞이 춤을 추어.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시름.                   

鴨川 十里ㅅ벌에 해가 저물어...저물어... ”

아! 정지용도 그날 우리가 걸었던 가모가와(鴨川) 강변에 있었다. 그곳에서 쓰라린 조국을 보았고 그리운 고국의 보금자리를 그리워했으며 고향집 처마 밑 제비조차도 그리워했을 시인. 가모가와 십리 벌에 긴 해가 드리울 무렵 남의 나라 그것도 고국을 강탈한 일본 땅에 홀로 남은 조선 청년은 얼마나 서러웠을까? 오렌지 껍질 씹는 나그네의 시름일까?

가모가와 강변을 거니는 우리가 정지용의 시름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비 앞에 섰다. 가모가와를 노래하며 답답한 현실일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견뎌낸 두 시인과 마주했다.

동지사대학 이마데가와 교정에 세워진 윤동주(왼쪽), 정지용 시비(오른쪽) ⓒ김영조


정지용은 1902년 출생하여 1950년 6·25전쟁 이후 월북했다가 1953년경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시인으로 한때 국어책에는 이름 석 자가 실리지 못한 채 정**로 있다가 이후 월북작가라는 붉은 딱지와 함께 국어책에서 그의 이름이 완전히 사라졌었다.

그러다 그의 이름은 족쇄가 풀리고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는 /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노래를 가수 이동원과 성악가 박인수가 함께 불러 명곡이 되면서 정지용은 우리 앞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의 “가모가와(鴨川)”란 시를 동지사대학의 시비에서 볼 수 있다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토속적인 우리 말의 멋과 맛을 진하게 우려낸 정지용 시인의 고향은 충북 옥천이다. 옥천에는 정지용 생가, 지용문학관 그리고 시비공원 등 시인을 기리는 문학공간이 잘 마련돼 있다. 특히 정지용 시인의 생가는 '향수'를 비롯한 주옥같은 명작 130여 편을 탄생시킨 곳인데 시인이 자랄 때 있었던 감나무와 아그배나무가 여전하고, '향수'에 나오는 실개천도 그대로 흐른다.

어두운 암흑기를 살다가 윤동주· 정지용 두 시인의 시비를 돌아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토 땅을 밟게 된다면 우리는 동지사대학에서 윤동주와 정지용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어두운 암흑기에도 영롱한 별처럼 살다간 이들의 삶을 본받아야 하리라!

정지용의 일생을 적은 시비 뒷면 ⓒ 김영조

 <정지용 해적이(연보)>

1902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에서 출생

1913 동갑인 송재숙과 결혼

1918 휘문고보에 입학

1919 유일한 소설 <삼인>이 발표됨. 동인지를 김화산, 박팔양, 박소경 등과 함께 주도

1922 휘문고보 졸업

1924 휘문고보의 교비생으로 일본에 유학하여 동지사대학 영문과에 입학

1926 공적인 문단활동이 시작됨. <카페.프란스>를 비롯하여 동시와 시조를 발표

1929 동지사대학교 졸업. 이후 휘문고보 영어교사로 16년간 재직. 시 <유리창>을 씀

1930 1930년대 시단의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됨. 주요작품 <이른봄 아침>, <교토 가모가와>, <바다>, <저녁 햇살>, <호수1,2> 등

1933 문학친목단체를 결성. <해협의 오전 3시>, 산문 <소곡> 등을 발표

1935 제1시집 `정지용시집`을 시문학사에서 출간

1941 제2시집 `백록담`을 문장사에서 펴냄

1945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자대학교)로 옮김. 담당과목은 한국어와 나전어(羅典語)

1946 경향신문이 주간이 됨. `지용시선` 을유문화사에서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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