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속 우리 문화 톺아보기>④윤동주 교토 시비 2편
동지사대학 윤동주 시비 옆에 나란히 선 정지용 시비
월북작가라 해서 한동안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던 정지용은 그의 시 “향수”를 노래한 성악가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에 의해 널리 알려졌고, 이제 그의 모교 동지사대학 교정에 윤동주 시비와 나란히 서서 오붓한 이야기라도 나누는 듯 다정하다.
시비엔 정지용이 1924년 쓴 “압천(鴨川)”이란 시가 새겨져 있다. 압천은 동지사대학 이마데가와 교정 근처에 있는 가모가와 강의 한자 표기이다. 윤동주 시비를 찾아 나섰던 날 저녁 우리 일행은 가모가와 강변을 걸었다. 한강처럼 강폭이 넓지는 않지만 한여름 밤의 더위를 식히려는 듯 많은 교토 시민들이 강변에 나와 도심 속의 또 다른 운치를 즐기고 있었다.
화려한 네온사인의 도심 불빛을 그대로 받아내어 반짝이며 흐르는 가모가와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다보는 우리 가슴에 윤동주와 정지용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스치운다. 정지용도 고국의 향수를 느끼며 이 강가를 거닐었을까?
저녁밥을 해먹고 산책 나온 강가에는 가족단위의 모습이 많았고 아베크족들도 꽤 눈에 띄었다. 이곳을 걸었을 정지용과 윤동주와 그리고 많은 조선 청년들은 고국의 가족을 떠올렸을 것이다.
“鴨川 十里ㅅ벌에
해는 저물어...저물어...
날이 날마다 님 보내기
목이 자졌다...여울 물소리....
찬 모래알 쥐여 짜는 찬 사람의 마음,
쥐여 짜라. 바시여라. 시원치도
않어라.
역구풀 우거진 보금자리
뜸북이 홀어멈 울음 울고,
제비 한 쌍 떠ㅅ다,
비맞이 춤을 추어.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시름.
鴨川 十里ㅅ벌에 해가 저물어...저물어... ”
아! 정지용도 그날 우리가 걸었던 가모가와(鴨川) 강변에 있었다. 그곳에서 쓰라린 조국을 보았고 그리운 고국의 보금자리를 그리워했으며 고향집 처마 밑 제비조차도 그리워했을 시인. 가모가와 십리 벌에 긴 해가 드리울 무렵 남의 나라 그것도 고국을 강탈한 일본 땅에 홀로 남은 조선 청년은 얼마나 서러웠을까? 오렌지 껍질 씹는 나그네의 시름일까?
가모가와 강변을 거니는 우리가 정지용의 시름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비 앞에 섰다. 가모가와를 노래하며 답답한 현실일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견뎌낸 두 시인과 마주했다.
정지용은 1902년 출생하여 1950년 6·25전쟁 이후 월북했다가 1953년경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시인으로 한때 국어책에는 이름 석 자가 실리지 못한 채 정**로 있다가 이후 월북작가라는 붉은 딱지와 함께 국어책에서 그의 이름이 완전히 사라졌었다.
그러다 그의 이름은 족쇄가 풀리고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는 /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노래를 가수 이동원과 성악가 박인수가 함께 불러 명곡이 되면서 정지용은 우리 앞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의 “가모가와(鴨川)”란 시를 동지사대학의 시비에서 볼 수 있다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토속적인 우리 말의 멋과 맛을 진하게 우려낸 정지용 시인의 고향은 충북 옥천이다. 옥천에는 정지용 생가, 지용문학관 그리고 시비공원 등 시인을 기리는 문학공간이 잘 마련돼 있다. 특히 정지용 시인의 생가는 '향수'를 비롯한 주옥같은 명작 130여 편을 탄생시킨 곳인데 시인이 자랄 때 있었던 감나무와 아그배나무가 여전하고, '향수'에 나오는 실개천도 그대로 흐른다.
어두운 암흑기를 살다가 윤동주· 정지용 두 시인의 시비를 돌아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토 땅을 밟게 된다면 우리는 동지사대학에서 윤동주와 정지용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어두운 암흑기에도 영롱한 별처럼 살다간 이들의 삶을 본받아야 하리라!
<정지용 해적이(연보)>
1902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에서 출생
1913 동갑인 송재숙과 결혼
1918 휘문고보에 입학
1919 유일한 소설 <삼인>이 발표됨. 동인지를 김화산, 박팔양, 박소경 등과 함께 주도
1922 휘문고보 졸업
1924 휘문고보의 교비생으로 일본에 유학하여 동지사대학 영문과에 입학
1926 공적인 문단활동이 시작됨. <카페.프란스>를 비롯하여 동시와 시조를 발표
1929 동지사대학교 졸업. 이후 휘문고보 영어교사로 16년간 재직. 시 <유리창>을 씀
1930 1930년대 시단의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됨. 주요작품 <이른봄 아침>, <교토 가모가와>, <바다>, <저녁 햇살>, <호수1,2> 등
1933 문학친목단체를 결성. <해협의 오전 3시>, 산문 <소곡> 등을 발표
1935 제1시집 `정지용시집`을 시문학사에서 출간
1941 제2시집 `백록담`을 문장사에서 펴냄
1945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자대학교)로 옮김. 담당과목은 한국어와 나전어(羅典語)
1946 경향신문이 주간이 됨. `지용시선` 을유문화사에서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