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마을 농약병 무더기, 알고보니 애매한 상수원보호구역 탓

사천시 곤명면 성방리의 청정마을에 정체불명의 빈농약병이 한 가득 쌓여 소동을 빚었다. 이 농약병은 인근 잔디경작지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됐지만 먹는 물 관리에 소홀함이 엿보인다. 사진은 주민들이 마을입구에 내건 펼침막. 성방리, 상수원보호구역
상수원보호구역에 맞닿아 청정함을 자랑하는 마을에서 한 무더기 빈농약병으로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이 빈농약병들이 인근 잔디 경작지에서 나온 것으로 곧 확인됐지만, 상수원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지난 17일, 사천시 곤명면 성방리의 한 마을회관 앞에는 빈농약병이 수북이 쌓였다. 사천시환경사업소가 오염방지 목적으로 농촌마을마다 설치해둔 빈농약병 수거함을 이 마을 주민들이 쏟아냈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마을주민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정체불명의 농약병들이 많이 들어 있어서였다. 주민들은 마을입구까지가 상수원보호구역인데다 농토 대부분이 수변구역으로 묶여 있는 점을 감안해 가능한 농약사용을 자제해 왔다고 한다. 또 아예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던 터라, 빈농약병이 많이 발견되자 적잖이 놀랐고 화도 난 상태였다.

이날 오후 취재기자들이 모인 가운데 사천시 환경보호과 관계자도 현장을 찾았다. 빈농약병은 어림잡아 500개가 훨씬 넘어 보였다. 또 주변에는 농약냄새가 진동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빈농약병은 주로 뉴○○, 매○○ 등의 이름을 달고 있었고, 사용법을 알리는 설명서는 이들이 잔디 농사에 사용되는 것임을 알려주었다.

성방마을 주민들은 영농폐기물 수거함에 정체불명의 빈농약병이 다수 보이자 아예 수거함을 쏟아냈다. 빈농약병 대부분이 잔디농사에 쓰인 것임을 확인한 주민들은 환경보호를 위한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나 않았을까 염려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성방리, 상수원보호구역
마을주민들은 분노했다.

“우리는 가능한 농약을 덜 쓰려고 노력하는데, 마을사람들이 쓰지도 않은 농약병이 이렇게 쌓여 있으니 억울한 일이다.” “상수원보호구역이 코앞이고, 눈에 보이는 농지는 대부분 수변구역에 포함돼 있다. 그런데 잔디농사에는 이렇게 농약을 많이 써도 되는 거냐?” “잔디농사는 마을사람들이 짓지 않는다. 모두 외지인들이고, 대규모로 농사짓는데 무슨 대책이 있어야 한다.”

심지어 “마을이미지를 고려해 빈농약병 수거함을 치워버리자”는 주장도 나왔다.

이런저런 주장들이 오갔지만 사천시의 입장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수변구역이 광범위하게 지정되다 보니 행위제한을 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장이나 음식점, 숙박시설 등 오폐수를 직접 배출하는 시설은 제한되지만 비점오염원이라 할 수 있는 농사의 경우 행위에 제한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사실 수변구역은 상수원보호구역에 비하면 행위제한이 약하다. 수변구역이란 수질보전을 위해 환경부가 지정한 일종의 완충녹지로 보면 된다. 이를 규정하고 있는 관련법은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땅 소유주가 원할 경우 수계관리기금으로 이를 사들이도록 하고 있다.

수변구역에서는 농사와 관련해 행위제한이 별로 없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잔디농사에 농약사용은 무방한 셈이다. 성방리, 상수원보호구역
잔뜩 뿔이 났던 마을주민들은 사천시 공무원의 설명에 억울함을 삼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날 현장을 찾은 관계공무원과 취재진이 인근 잔디경작지를 둘러본 바로는 사천시를 비롯한 관계기관이 먹는 물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잔디경작지에는 마침 농장주인이 잔디 출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잔디에 치는 농약 때문에 현장에 나왔다는 일행을 향해, 잔디에 치는 농약은 저독성이며 많은 양을 쓰지 않는다, 농약을 쓰지 않고 손수 풀을 메어서는 잔디농사를 지을 수 없다 등등 여러 애로사항을 늘어 놨다.

그리고는 “나는 이 땅을 임대해 농사짓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려줬다. 그가 농사짓는 땅 인근 농토도 몇 해 전까지는 자신이 농사를 지었으나, 이후 그곳이 보상이 끝난 국가 땅이란 이유로 잔디 수확을 제대로 못했다는 볼멘소리였다.

사진 왼쪽은 상수원보호구역, 오른쪽 잔디경작지는 수변구역이다. 겉으로 보기에 높이 차이를 느끼기 힘들 정도지만 상수원보호구역 지정 당시 땅 소유주의 반발로 제외됐다는 게 마을주민들의 설명이다. 놀라운 것은 이런 곳이 여러 곳임을 관계기관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성방리, 상수원보호구역
이와 관련해 마을주민들도 거들었다.

“실제로는 저기나 여기나 높이는 같은 기라. 이 말은 저기가 상수원보호구역이면 여기도 상수원보호구역이어야 한다는 말인데, 지정 당시에 농민들이 버티면 봐주고 그랬던 모양이야.”

남강댐으로 생긴 진양호는 광역상수원으로서 특별히 보호되고 있는데, 남강댐의 계획홍수위선인 해발46미터까지는 기본적으로 상수원보호구역이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이 곳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수변구역인 잔디경작지나 상수원보호구역인 인근 풀밭이나, 적어도 눈으로 보기에 높이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는 데 모두 공감했다. 나아가 환경보호과 직원은 상수원보호구역 지정 당시 이와 유사한 사례가 더러 있었음을 알려줬다. 그러나 이에 대한 책임이 사천시에는 있지 않음을 역설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수변구역 지정이 환경부의 몫이라면,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은 시도지사 관할이다. 결국 남강댐의 경우 경남도에 책임이 있으며, 이럴 경우 사천시 역시 책임 선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성방리 주변으로 상수원보호구역이 표시된 지도. 성방천에서 가까운 곳이 기형적으로 제외돼 있다. 성방리, 상수원보호구역
사천시의 ‘먹는 물 관리’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이날 현장을 찾은 담당공무원의 업무 태도다.

이 관계자는 수변구역에서의 행위제한에 관해 설명 할 때나 수변구역과 상수원보호구역의 범위와 관련해서도 말이 자꾸 달라져,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

물론 상수원보호구역의 범위와 관련 규정 등을 머릿속에 담고 있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문제는 이튿날이 되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잔디경작지와 그 주변이 상수원보호구역인지 수변구역인지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한 채 “조사해보고 문제가 있으면 조취를 취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우연의 일치로, 사천시는 같은 날 “진양호 수질보호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조류 발생을 막기 위해 비료 양까지 줄이도록 홍보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에 오류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주민들 의견이다. 그래야 상대적 박탈감을 지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성방리, 상수원보호구역
그러나 사천시의 이런 홍보가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더 신뢰할 수 있는 행정력을 평소에 보여야 할 것이다. 또 비료에 비하면 농약은 더욱 치명적인 만큼 수변구역만이라도 농약사용을 자제시키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그리고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에 있어 일부 문제가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면, 이를 바로 잡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성방마을의 빈농약병으로 인한 소동은 상수원보호구역이 제대로 지정되기만 했어도 분명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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