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사천] 왕과 사자

『왕과 사자』 김주현 글 / 이로우 그림  / 만만한책방 / 2023
『왕과 사자』 김주현 글 / 이로우 그림 / 만만한책방 / 2023

[뉴스사천=황다슬 삼천포도서관 사서] 일제강점기의 일본은 우리 문화와 얼을 없애기 위해 많은 일을 저질렀다. 조선의 정신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간악한 마음으로 창경궁을 헐어 창경원으로 낮춰 부르고, 식물원과 동물원을 지었다. 작가는 동물원 철창에 갇혀 주위를 관찰하고만 있는 지친 사자의 눈을 빌려 이야기를 전한다.

동물원은 안전하고 밥 굶지 않는 천국이라며 좋아하는 원숭이도 있지만, 초원을 달리던 기억을 가진 동물들은 답답함을 참지 못한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피가 날 때까지 벽에 머리를 박고, 코끼리는 추위를 견디지 못해 떨고만 있다. 동물원의 유일한 조선인 사육사 김 씨는 그런 동물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며 나라의 처지를 한탄한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은 동물원이 쉬는 목요일에만 찾아온다. 나라를 뺏긴 왕과 철창에 갇힌 동물의 왕은 텅 빈 눈동자로 서로가 같은 처지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밖에서 사람들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죽어 나갈 때도, 창덕궁 이왕으로 격하되었을 때도 말을 아끼던 순종은 죽기 전 마지막 용기를 내 한일합병조약은 협박에 의한 것이었다고 선언한다. 사람들은 다시 한번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지난 3·1운동 때 선뜻 나서지 못했던 자신을 탓하던 사육사 김 씨도 결국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다. 모두가 무모한 행동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김 씨는 일본 순사에게 잡혀갔지만, 사자는 멈추지 않고 쇠창살을 긁었다. 시간이 흘러 쇠창살이 움푹 패어 부술 수 있을 때쯤 마침내 대한제국은 독립한다.

우리에겐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있다. 일제의 억압에도 멈추지 않고 만세를 외쳤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자유와 행복은 동물들에게도 주어져야 할 권리이다. 갇혀있는 사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때의 창경원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곳에서 만난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역사와 자유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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