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박연묵교육박물관이 품은 이야기 ⑤‘추억 73’

통영 외딴 섬 ‘두미초’ 발령…“육지 구경 시켜야겠다”
사천비행학교 등 도움으로 71·72년 수학여행 진행
2년에 걸친 아름다운 기억 담은 앨범 ‘추억 73’

통영 옛 두미초등학교 학생들과 첫 수학여행을 떠나 사천비행학교에서 기념촬영한 사진이다. ‘추억 73’이란 앨범에 실렸다.
통영 옛 두미초등학교 학생들과 첫 수학여행을 떠나 사천비행학교에서 기념촬영한 사진이다. ‘추억 73’이란 앨범에 실렸다.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박연묵 관장의 정체성은 교육자에 있다. 남보다 훨씬 늦게 시작한 초등학교 교사였음에도 학생들을 향해 쏟은 정성이 누구 못지않았다. 그 유별났던 제자 사랑의 흔적이 ‘추억 73’이라는 기록물에 잘 묻어난다. ‘추억 73’은 빨간 양장 제본의 앨범이다.

“젊었을 때 한참을 농사만 짓다가 주위 권유로 느지막이 학생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어. 처음엔 순회 강사였지. 낙도나 오지에 있는 학교를 돌며 임시로 근무하는 교사라. 그러다 초등 교사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초등교원 양성소가 운영됐는데, 거기를 수료하고부터 제대로 된 교사가 된 셈이야. 그때가 1970년이었어.”

정식 교사로서 그의 첫 발령지는 통영시 욕지면 두미도에 있던 두미초등학교(1999년 폐교)였다. 당시에는 학교의 여건이 열악해서 높은 학년은 한 교사에게 두 개 학년의 담임을 맡겼다고 한다. 그는 5·6학년을 맡았다.

“학생들을 맡아 2년을 같이 있어 보니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전거를 실물로 본 친구가 한 명도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애들에게 육지 구경을 시켜줘야겠다 마음을 먹게 됐지. 그런데 돈이 문제야. 학부모들에게 그럴 여유가 없었거든. 그런데 마침 친구가 사천비행학교(현 공군 제3훈련비행단의 전신)에 의무대장(당시 중령)으로 온 거라. 이 친구가 비행학교 교장을 연결해 줘서 일이 술술 풀렸지.”

박연묵 관장이 말한 의무대장은 제13·15대 국회의원을 지낸 황성균 전 순영의료재단 이사장이다. 또, 당시 사천비행학교 교장은 김만용 전 대령이다. 박 관장은 이들의 도움이 컸을 뿐만 아니라 진주교대 부속초등학교와 진주의 한 여관에서도 호의를 베풀어 두미초등학교의 첫 수학여행이 가능했노라 회고했다.

“그렇게 준비는 다 됐는데 큰 문제가 생겨버렸어. 남원에서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을 태운 열차에 큰 사고가 난 거라. 이 때문에 모든 수학여행을 중단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지. 학생들은 뭍 나들이 간다고 들떠 있는데, 사면초가라. 고민 끝에 ‘아이고 모르겠다. 내 직을 걸자’하고는 강행했지.”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무모하면서도 큰 위험을 무릅쓴 결정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론 제자를 향한 새내기 교사의 사랑과 열정이 그만큼 컸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추억 73' 앨범에 담긴 견학 사진들.
'추억 73' 앨범에 담긴 견학 사진들.

다행히 결과는 좋았다. 1971년 12월 13일, 두미초등학교 수학여행단은 겨울 찬 바람을 뚫고 삼천포항에 도착했다. 삼천포역에서 기차를 타고 사천역에 내렸다. 여기서부턴 사천비행단 소속의 버스가 아이들을 안내했다. 진주에 있던 옛 대동공업사와 진양호, 촉석루 등을 구경했다. 여관에서 하룻밤 묵은 뒤에는 사천비행학교 곳곳을 둘러봤다. 떠나는 아이들에게 김만용 교장은 학용품을 푸짐하게 선물했다.

“이게 끝이 아니라. 다음 해에는 그 후배들이 자기들 차례라고 기다리고 있어. 우찌 가만있겠네. 또 추진했지. 이번에는 사천비행학교에서 밥도 먹이고 잠까지 재워주는 바람에 돈을 거의 안 쓰고 할 수 있었던 거라. 부모들도 좋아했지. 학생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돌아와서는 아이들에게 기행문도 쓰고, 감사 편지도 쓰게 했는데, 글짓기 솜씨가 제법 늘더라고? ‘아, 이게 산 교육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

김만용 사천비행학교장은 학생들의 방문을 계기로 두미초교를 직접 찾기도 했고, 아이들 졸업식에 맞춰 두미초교 상공을 비행하기도 했다. 축하와 연대의 뜻을 전한 셈이다. 박연묵 관장은 그런 나날의 기억을 자신의 사진기로 담아 ‘추억 73’에 고스란히 담았다. 이듬해, 3년간 몸담은 학교를 떠나며 그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기도 했다.

옛 두미초등학교의 기록이 담긴 앨범.
옛 두미초등학교의 기록이 담긴 앨범.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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