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가을 가을’ 하는데, 왜 앙상한 가지만 남겼을까
원인은 구멍병? 매미충? 흰불나방? 아니면 기후 변화?
7~8월에 잎 떨구는 ‘벚나무 조기 낙엽 현상’ 점점 심화
그중 시청 앞에만 단풍으로 물든 벚나무…‘눈에 띄네’

벚나무가 잎을 일찍 떨구는 현상이 점점 심해지는 가운데 선진리성으로 향하는 벚나무 가로수길이 가을인데도 겨울인 듯 휑하다. 10월 22일 촬영.
벚나무가 잎을 일찍 떨구는 현상이 점점 심해지는 가운데 선진리성으로 향하는 벚나무 가로수길이 가을인데도 겨울인 듯 휑하다. 10월 22일 촬영.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애걔, 여기 왜 이래? 단풍은커녕 비쩍 마른 나뭇가지들 뿐이잖아!” “그러게. 가을이 아니라 완전히 겨울 분위긴데?”

실망과 허탈, 걱정의 마음이 잔뜩 묻어나는 이 대화는 지난 10월 22일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성을 찾은 방문객들 사이에서 오갔다. 오랜만에 고향에 들렀다가 학창 시절에 단골 소풍 장소였던 곳을 찾았다는 이들은 울긋불긋한 단풍을 기대했던가 보다. 그러나 그들을 맞은 건 잎을 온통 떨군 채 앙상한 가지만 드러낸 벚나무 군락이었다.

그렇다. 한때 공원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던 선진리성은 벚나무로 유명한 곳이다. 봄이면 화려한 벚꽃 풍경에 상춘객들도 적잖이 몰려든다. 그런 선진리성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가을 단풍! 그러나 그 단풍은 이제 먼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언제부턴가 여름이 한창인 7~8월부터 잎을 떨구기 시작해, 9월이면 잎을 매단 벚나무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선진리성 표지석 뒤로 잎이 다 떨어진 벚나무의 모습이 보인다.
선진리성 표지석 뒤로 잎이 다 떨어진 벚나무의 모습이 보인다.

이런 현상이 선진리성에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국도 3호선에서 선진리성으로 향하는 도로에 늘어선 벚나무 가로수들도 같이 겪는 일이다. 이뿐이랴. 삼천포 노산공원, 서포면 비토섬 가로수길, 곤양면 광포만로 벚나무길도 비슷한 상황이다. 봄엔 벚꽃 터널, 가을엔 단풍 터널을 연출했던 벚나무에 언제부턴가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이를 두고 추갑철 경상국립대 환경산림과학부 명예교수는 ‘기후 변화’를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최근 점점 심해지는 ‘벚나무 조기 낙엽 현상’은 강수일 증가에 따른 일조량 부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조량 부족으로 광합성 작용도 원활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조기 낙엽 현상의 직접적 원인으로 ‘구멍병’을 들었다.

‘구멍병’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북미 대륙의 벚나무, 복숭아나무 등 과일나무류에서 주로 발생하는 것으로, 곰팡이 또는 세균 때문에 잎에 구멍이 생기는 병이다. 기온이 높고 습한 날씨에서 더 쉽게 발병하며, 이 병에 걸린 나무는 대체로 잎을 일찍 떨군다.

추갑철 명예교수는 “기후 변화로 한반도가 고온다습해지면서 조기 낙엽의 원인인 ‘구멍병’이 더 확산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봄이 와도 벚꽃을 못 볼 수 있다”는 경고도 남겼다. ‘구멍병’의 예방법으로는 농약 살포와 병든 잎의 빠른 제거를 꼽았다.

벚나무가 잎을 일찍 떨구는 데 매미충이 크게 작용한다는 주장도 있다. 매미충은 잎에 붙어 식물의 즙을 빨아 먹는 흡즙성 해충이다. 이동운 경북대 곤충생명과학과 교수는 “매미충은 4월부터 주로 발생해 과실류 나무에 피해를 준다”며 “벚나무에도 해를 끼치고 있음을 연구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매미충이 벚나무 잎에 붙어 영양분을 빨아먹음으로써 엽록소가 부족해지고 황화현상이 찾아와 잎이 빨리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이동운 교수는 “매미충도 기온이 높고 습도가 높으면 더 확산하는 경향이 있다”며, 기후 변화가 벚나무의 조기 낙엽 현상을 부른다는 해석도 무리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또 “올해는 미국흰불나방 애벌레가 돌발해충으로 등장해 전국에 피해를 줬다”며, “곳에 따라 벚나무에도 해를 끼쳤다”고 덧붙였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벚나무. 여름철부터 기승을 부렸던 미국흰불나방 애벌레가 여러 마리 붙어 있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벚나무. 여름철부터 기승을 부렸던 미국흰불나방 애벌레가 여러 마리 붙어 있다.

이렇듯 사천시 대부분 지역에서 벚나무 조기 낙엽 현상이 관찰되는 가운데 사천시청 앞 벚나무 가로수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초록색 잎이 풍성하거나 조금씩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이다.

사천에 자라는 벚나무 대부분이 잎을 일찍 떨군 데 비해 사천시청 앞 벚나무 가로수는 이제 울긋불긋 단풍이 들고 있어 눈길을 끈다.
사천에 자라는 벚나무 대부분이 잎을 일찍 떨군 데 비해 사천시청 앞 벚나무 가로수는 이제 울긋불긋 단풍이 들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를 두고 김종수 사천시 녹지공원과장은 “벚나무 조기 낙엽 현상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라고 강조한 뒤 “방제를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사천시청 앞은 도로관리원들이 방제를 위해 나고 들면서 남은 약제를 더 자주 뿌렸을 수 있다”며 현재 상황을 짐작했다.

그나저나 이런 추세라면 벚나무 단풍 구경은 점점 걸렀다. 이는 전국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다. 하긴 ‘머잖아 벚꽃도 구경하기 힘들 것’이라는 경고마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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