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화란

영화 '화란' 홍보물
영화 '화란' 홍보물

[뉴스사천=배선한 시민기자] 새아버지의 폭력을 벗어나 엄마와 함께 화란(和蘭,네덜란드)으로 가는 것이 꿈이라는 소년, 지옥 같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잔혹한 폭력이 난무하는 뒷 세계의 또 다른 지옥이었다. <화란>은 정통 누아르 방식을 차용해 희망을 싹을 꺾고 또 꺾는 영화다. 그래서 한없이 어둡고 무겁다. 끝을 알 수 없는 암흑 속에 혼자 내버려진 듯 어둡고 마치 발에 무거운 추를 단 듯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는다. 

송중기 배우가 노개런티로 출연한다고 해서 화제가 됐고 칸느로 가면서 궁금증을 증폭시켰으니 대충 기본은 하지 싶었는데, 어라? 기본 정도가 아니라 제법 멋지다. 최근에 개봉한 누아르 중 가장 색채가 분명하다.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물고 뜯고 치고 빠진다. 핵심은 자기만의 스타일이다. 모든 영화가 그렇듯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지만 분명한 것은 완성도를 두고 나무랄 수는 없다는 부분이다.

서사가 극적이지 않고 정통 누아르 방식을 끌어왔음에도 이렇게 스타일리시한 것은, 캐릭터 그 자체로 호연한 배우들과 이 배우들을 조련하는 감독의 뚝심 있는 연출이다. 청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감독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만의 어둠 속에 당분간 머물러 있었으면 좋겠다 싶다. 첫 장편으로 제대로 눈도장을 찍은 만큼 차기작이 눈길 쏠리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니, 더 다채로운 어둠이 빛깔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화란>처럼 누아르라는 검은 서사의 맥락을 본능적으로 아는 한 예술가가 성장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 희망을 짓밟히면서 성장하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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