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오펜하이머

영화 '오펜하이머' 홍보물
영화 '오펜하이머' 홍보물

[뉴스사천=배선한 시민기자] 개인사도 인류의 역사도 어쩌면 아이러니의 연속인 법이다. 개인이 가진 엄청난 천재성으로 인해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했던 인물도 많으니, 오펜하이머도 그런 사람이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파괴할지도 모르는 선택을 해야 하는 천재 과학자’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를 다룬 <오펜하이머>는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또 다른 천재가 써 내려간 역사와 천재와 한 인간에 대한 밀도 높은 탐구다.

<오펜하이머>는 180분이라는 러닝타임을 가진 긴 영화다. 누군가는 지루하다 느낄 테고, 또 다른 누군가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수 있다. 취향 혹은 영화를 보는 관점에 따라 갈릴 수 있다. 하지만 잘 만든 영화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좋은 영화를 변별하는 여러 기준이 있지만 상식과 보통의 영화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 

어느 순간 놀란 감독의 작품은 CG의 힘을 빌리지 않은 스펙터클이라는 단어로 대신하곤 했는데, 이 스펙터클을 미시세계로 끌어들였다. 특유의 치밀함으로 한 과학자의 내면과 갈등을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솜씨 좋은 외과 의사가 환부를 들여다보듯 날카롭고 예리해서 그 날선 감수성은 마치 칼날 같다. 한 인간을 벼리고 벼리다 본질만 남긴다. 그리고 마치 원자와 전자라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폭발하는 것이 핵폭탄이라는 것처럼, 응축시켰다가 폭발시키는 힘이 실로 어마어마하다.

놀란의 영화를 두고 완성도를 논하는 것은 이제 무의미한 듯하고 <오펜하이머>의 가장 놀라운 점은 긴 러닝타임에 흔들리지 않고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다. 팬이 아닌 한 관객으로서도 놀라운 일이다. 전작들에서 그러했듯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영화라는 장르를 주무르고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솜씨는 여전하다. 좋은 연출에서 좋은 이야기와 캐릭터가 탄생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도 마찬가지다. 킬리언 머피는 워낙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지만 이 영화로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좋겠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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