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팔포 전어 축제, 지나온 20년 나아갈 20년

제19회 삼천포항 자연산 전어축제가 지난 21일 개막했다.
삼천포항 자연산 전어축제가 어느덧 20회째를 맞았다..사진은 지난해 축제 모습.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삼천포항 팔포 전어 축제’(1~4회), ‘사천시 삼천포항 전어 축제’(5~9회), ‘사천시 삼천포항 자연산 전어 축제’(10회~현재). 시기에 따라 부르는 이름은 달랐지만, ‘전어’를 소재로 한 삼천포의 대표 먹거리 축제라는 점에선 변함이 없다. 그 축제가 올해로 20회를 맞았다. 코로나19 감염병 대유행으로 2년(2021~2022년)을 쉰 결과다.

세상사가 대체로 그렇듯 무언가를 꾸준히 계속하기란 무척 어렵다. 축제도 마찬가지. 한때 지역 이름을 딴 축제가 전국에서 유행처럼 쏟아졌지만, 반짝 빛나고 사라진 게 한둘이 아니다. ‘지방자치’라는 시대적 화두 속에서도 지역 축제가 자리 잡기란 그만큼 어렵고 힘들었다.

반면에 팔포 전어 축제는 주민이 먼저 제안하고 진행 주체로 나섰으면서도 아직 건강하게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들은 그 특별함이 앞으로도 쭉 이어지길 바란다. 이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축제의 지나온 20년에서 그 가능성을 엿본다.

해녀들이 터 잡은 곳 ‘팔포’

먼저 전어 축제의 중심 무대, 즉 팔포라는 장소에 관해 알아 보자. 팔포는 보통 노산공원에서 통창공원까지를 일컫는다. 삼천포가 크게 성장하기 전인 조선 시대 말기에도 사람들이 살았다. 팔장개라 불렸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제법 큰 시장도 형성됐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어민들이 집단으로 이주해 와 마을을 이루기도 했다.

축제장소인 팔포음식특화지구 일원은 전어축제 기간 시민과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지난해 전어축제 당시 인파. 축제장소인 팔포음식특화지구 일원은 전어축제 기간 시민과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삼천포항 자연산 전어 축제가 열리는 곳은 그중에서도 노산공원 동쪽 기슭의 팔포 매립지 일원이다. 이곳은 50년 전만 해도 바다였으나, 1980년대에 매립 공사가 이뤄져 땅으로 거듭났다. 이때부터 횟집 등 상가가 주를 이뤄 나중에는 ‘팔포 음식 특화 지구’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매립 전까지는 제주에서 올라온 해녀들이 주로 터를 잡았던 곳이다. 노산공원 기슭의 너럭바위는 해녀들이 갓 잡아 온 해산물을 먹는 관광객들로 진풍경을 이루기도 했다.

주민 제안으로 2002년에 축제 시작 

2003년 8월 12~14일에 개최한 제2회 삼천포항 팔포 전어 축제 모습.
2003년 8월 12~14일에 개최한 제2회 삼천포항 팔포 전어 축제 모습.

이런 역사와 배경 탓인지 이곳에서 해산물을 주제로 축제를 열어 보자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나왔던 모양이다. 몇몇 식당이 모여 아주 개인적인 형태의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는 증언도 있다. 그러나 ‘전어 축제’라는 이름을 걸고 첫 행사를 연 것은 2002년의 일이다. 다음은 팔포 상가 번영회(팔포음식특화지구 상가 번영회의 옛 이름)의 초대 회장을 맡았던 천봉태(1950년생) 씨의 말이다.

천봉태 초대 추진위원장.
천봉태 초대 추진위원장.

“객지 생활을 하다가 팔포에 들어와 중식당 문을 연 게 1988년이라. 10년 남짓 하니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 그 무렵 지역 선배님들이 축제를 해 보자고 제안했어요. 나는 듣고만 있었는데, 갑자기 나더러 책임을 맡아 보라는 거야. 내가 삼천포에서 태어나긴 했어도 객지 생활이 길어서 자신이 없었는데, 다들 도와준다고 하니까 용기를 냈던 거예요. 2001년에 상가 번영회를 만들고 동사무소부터 찾아갔던 것 같네요.”

그 당시 동서금동사무소의 동장은 지금은 작고한 신태영 씨가 맡았을 때다. 천 씨의 설명에 따르면, 신태영 동장은 주민들의 제안을 기꺼이 도왔다. 그때 신 동장의 지시로 팔포 상인들의 손발이 되어 준 이가 박창민 주무관, 지금의 사천시 행정과장이다.

“동서금동에 근무할 때죠. 제 기억으론 김수영 사천시장이 당선된 뒤 초도 순방 차 동에 방문했을 때인데, 이창조 씨 등 일부 주민들이 수산물 축제를 제안했어요. 이때부터 검토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신태영 동장님이 계획안을 한번 만들어 보라 하기에 남해 미조 해산물축제 등을 참고했어요. 계획안을 냈더니 ‘동 단위에서 주관하기에 너무 크다’고 해서 행사 규모를 줄였던 기억이 납니다.”

잡수시고 노시고 주무시고 가이소!

'제20회 삼천포항 자연산 전어축제'가 8월 10일부터 13일까지 사천시 동서금동 팔포음식특화지구에서 열린다.
'제20회 삼천포항 자연산 전어축제'가 8월 10일부터 13일까지 사천시 동서금동 팔포음식특화지구에서 열린다.

‘잡수시고 노시고 주무시고 가이소!’ 팔포 전어 축제를 상징하는 대표 구호도 이때 만들어진다. 이 구호를 만든 이도 박창민 과장이다.

“팔포 지구 상가를 분석하니 가장 많은 게 식당, 노래방, 숙박업소더라고요. 그러면 먹고 놀고 자는 것까지 다 해결되잖아요. 그래서 사업계획안에 담아 봤는데, 다들 좋게 평가해주셨죠. 지금도 그 구호를 쓰고 있으니까 흐뭇합니다.”

2010년 8월 4~8일에 개최한 제9회 사천시 삼천포항 전어 축제 모습.
2010년 8월 4~8일에 개최한 제9회 사천시 삼천포항 전어 축제 모습.

그러나 축제를 준비하면서 바뀐 게 있으니, 바로 축제 이름이다. 처음엔 ‘수산물 축제’를 내세웠으나 좀 더 특징을 갖기 위해 떠올린 게 ‘전어 축제’이다. 삼천포에서 여름철에 가장 많이 나는 어종이 전어라는 점에서 착안했다. 축제 시기는 7말8초(7월 말에서 8월 초)로 잡았다. 전어를 회로 즐기기엔 이때가 낫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기왕이면 전어라는 상품을 일찍 선점하자는 뜻도 담았다.

팔포 색깔 보여준 ‘해녀 수영 대회’

팔포 전어 축제는 이렇게 탄생했다. 천봉태 번영회장은 자연스레 축제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하지만 주민과 상인들을 축제의 주체로 내세우는 일은 무척 힘들었다. 특히나 횟집 외에 다른 상가에선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분담금 걷기가 버거웠다.

때로는 “짜장면 파는 사람이 뭔 전어 축제냐?” “전어 하면 가을인데, 한여름에 전어 축제가 뭐꼬?” 이런 얘기도 들어야 했다. 천 위원장과 축제 추진위는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다. 고속도로 휴게소 등을 찾아다니며 특별히 제작한 부채와 리플릿 등을 나눠 주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축제를 연기하는 아픔이 있었지만, 결과는 나름 성공이었다. 무엇보다 출향인들이 축제장을 많이 찾아 줬다. ‘해녀 수영 대회’와 ‘전어 잡기 체험’은 팔포가 가진 특유의 색깔을 가감 없이 보여 준 사례로 평가받았다.
 
다만 재정적인 면에선 아쉬웠다. 사천시에서 1,500만 원의 지원이 있었음에도 수백만 원의 적자를 본 것이다. 부족분은 천 위원장이 부담했다는 후문이다.

세계타악축제 덕분에 ‘껑충’

2014 사천세계타악축제가 당초 예산삭감으로 존폐위기로 내몰렸다가 4개월 만에 기사회생했다.
사천세계타악축제에서 여러 나라의 음악인들이 한데 어울려 공연을 하는 모습. (사진=뉴스사천 DB)

팔포 전어 축제가 ‘사천시 삼천포항 자연산 전어 축제’로 이어오는 동안 상가 번영회장에는 7명이 이름을 올렸다. 천봉태(1대)-김정홍(2대, 작고)-최충림(3대)-김성계(4대, 작고)-장인영(5대)-김윤길(6대)-류봉군(7대)-장제영(8대) 회장 순서다. 번영회장은 곧 축제 추진위원장이다.

이 축제는 2003년 2회 행사 뒤 큰 위기를 맞는다. 태풍 매미가 남해안에 상륙하면서 팔포 매립지 상가에도 큰 타격을 안긴 것이다. 이때 상인들은 대표단을 꾸려 해양수산부 등을 찾아다니며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대책의 핵심은 파제제 설치였다. 파제제란 파도의 발생과 침입을 막기 위해 항만 안쪽에 설치하는 소규모 방파제를 말한다.

최충림 5·6대 축제추진위원장
최충림 5·6대 축제추진위원장

“태풍 매미의 위력이 엄청났거든요. 팔포 일대가 쑥대밭이었어요. 내가 회장으로 있을 때인 2006년 무렵에 파제제 공사를 시작하면서 그 뒤로는 큰 피해가 없었던 것 같아요. 전어 축제도 계속할 수 있었죠. 또 하나 운이 좋았던 것은 이때부터 ‘세계타악축제’가 시작했다는 겁니다. 전어 축제도 이 시기에 가능한 한 맞추면서 세계적인 연주자들을 활용할 수 있었어요. 축제가 더욱 빛이 났죠.”

최충림(1957년생) 3대 번영회장의 말이다. 그는 부끄러운 얘기도 꺼냈다.

“전어 축제가 전국에 알려지면서 특히 대전-충청권 관광객이 많이 왔어요. 그러니까 가격이 오르고 호객행위까지 등장하면서 언론에 뭇매를 맞았죠. 언론을 통해 축제를 알렸는데, 거꾸로 비판을 받으니까 많이 아팠죠. 그래도 그때 분위기를 바로 잡았던 게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또 다른 20년을 위한 고민

삼천포항 자연산 전어 축제의 재정 규모. 사천시 지원금이 꾸준히 늘었음을 알 수 있다.
삼천포항 자연산 전어 축제의 재정 규모. 사천시 지원금이 꾸준히 늘었음을 알 수 있다.

팔포 전어 축제의 또 다른 위기는 최근에 찾아왔다. 바로 코로나19 대유행과 후속 여파. 이 때문에 2021년과 2022년 두 해를 건너뛰었다. 올해로 8년째 상가 번영회장인 장제영(1966년생) 추진위원장의 걱정도 여기에 있다.

장제영 현 축제추진위원장.
장제영 현 축제추진위원장.

“지난해엔 정말 많은 사람이 축제장에 왔죠. 그런데 올해는 모르겠어요. 경기가 워낙 나쁘고, 날씨도 우기가 계속 이어져서 현재로선 늪에 빠진 느낌이거든요. 요즘엔 전어도 많이 잡히지 않으니 이래저래 걱정입니다. 올해 축제 시기를 조금 늦춘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의 말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녹아 있다. 전어 축제의 미래와도 연결되는 듯하다.

“삼천포항 자연산 전어 축제는 그야말로 자연산 전어에 의존하거든요. 자연산이 부족하니 전어가 금값이 되는 거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횟값도 올라가는데, 이미지가 좋지 않죠. 어민들 얘기로는 겨울과 봄철에 사료용으로 전어를 싹쓸이한다고 해요. 씨 전어가 사라지는 거죠. 그래서 5월에 시작하는 전어 금어기를 더 앞당기자고 우리는 요구하는데, 아직 반영은 안 되고 있네요.”

‘제20회 사천시삼천포항 자연산 전어축제’ 홍보물.
‘제20회 사천시삼천포항 자연산 전어축제’ 홍보물.

“젊은 층 끌어들일 방안 고민해야”

코로나19 대유행이 전어 축제에 일시적 걸림돌이었다면, 전어 부족은 근본적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올해 전어 어황은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게 윤병수 사천시 해양수산과장의 설명이다. 그는 전어 축제를 위한 조언을 덧붙였다.

“전어 축제는 민간 자생 축제로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시에서도 재정 지원을 꾸준히 늘려 왔어요. 다만 축제 방문객이 점점 고령화하고 있음을 눈여겨봐야 해요. 또 다른 여름철 어종인 문어를 결합한다든가 해서 젊은 층을 끌어들일 방안을 더 고민해야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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