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태 막걸리문화촌장.
최인태 막걸리문화촌장.

[뉴스사천=최인태 막걸리문화촌장] 지난 5월에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한국을 다녀갔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만찬장에서 ‘경주법주 초특선’을 내어놓았다. 그러면서 “쌀 표면을 79%까지 깎아내 더욱 깨끗하고 부드러우며, 우리 청주 가운데 최고로 손꼽히는 천년고도의 명주”라는 설명을 붙였다. 참으로 부끄럽고 속상한 일이다.

경주법주는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방식으로 만든 술이다. 쌀알에 누룩곰팡이를 접종해 만든 흩임누룩, 즉 입국(코지ㆍ立麴)과 정제효모를 사용해 만드는 일본식 청주라는 얘기다.

일제강점기에 청주 공장은 통치 자금 확보를 위한 조세 수탈 도구로 활용됐다. 일본인 기업의 안전한 조선 진출을 위해 부산에서 시작해 인천, 군산, 마산 등 개항지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사천과 가까운 마산에는  청주 공장이 14곳이나 되었다.

그러다가 일본이 패망하면서 청주 공장 대부분은 문을 닫았다. 다만 그 일부가 남았는데, 경주법주가 그중 하나다. 그 술을 양국 대표가 함께하는 만찬주로 내놓았으니, 어찌 부끄럽지 않으랴. 한국 대통령이 한국 술이 아닌 일본 술 사케(さけ)를 대접한 셈이지 않은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절이나 제사 때에 집집이 정성껏 빚은 맑은 술(淸酒ㆍ청주)을 올렸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청주라는 이름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주세법 때문이다.

주세법에 따르면, 청주가 되기 위해서는 누룩을 전체 쌀 양의 1% 미만으로 사용해야 한다. 당시 일본식 청주, 사케는 코지(입국)를 발효제로 쓰고 누룩을 첨가제로 넣어주기에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우리 고유의 청주는 누룩을 발효제로 썼기에 이를 지킬 수 없었다. 그런 까닭에 우리의 술은 청주가 되지 못하고, 대신 약주로 불려야 했다. 이로써 기존의 우리나라 청주는 약주가 되었고 일본의 사케가 청주로 변했다. 나아가 일제강점기의 주세법이 해방과 미군정을 거치면서 그대로 굳어져 지금에 이른다.

한일 정상의 만찬주가 뜻밖의 논란을 빚으면서 ‘진짜 천년고도의 명주’로 주목 받는 술이 있다. 350년 역사를 자랑하는 ‘경주 교동법주’가 그것이다.

경주 최씨 부자집 가주(家酒)로 전해 내려오는 술로서 맛이 순하고, 부드럽다. 마신 후 부작용이 없고 소화가 잘되어 반주용으로 많이 쓰인다. 교동법주는 조선 숙종 때 사옹원(궁중 음식 관장)을 지낸 최국선(崔國璿)이 고향 경주로 귀향해 사가에서 빚어온 술이다. 제사나 명절ㆍ길흉사에 손님 접대용으로 사용해 왔다.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우리의 전통주가 88올림픽을 하면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요즘이 제2의 전성시대다. 이런 시기에 정부의 인식은 아둔하기 짝이 없었던 셈이다.

여름이 깊다. 앞산은 구름 모자를 쓰고, 때론 비가 장대 같이 쏟아진다. 변덕스러운 날씨에도 뉴스사천 독자님들이 내내 건강하시길 두 손 모은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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