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영조 시민기자의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입춘 즈음에 눈 속을 뚫고 피는 설중매
“귓바퀴를 에이는 하늬바람도 / 양평골 소주병을 깨뜨린 강추위도 / 흙간에 쌓인 씨감자의 / 젖줄을 문파란 싹을 / 더는 어쩌지 못한다. / 보라, 부푼 한강 물. / 뒷골목 구정물 빙판이 녹은 물까지 / 합세했거든,
상여가 나간 마을. / 먼 그리움으로 / 광목빨래에 와서 부딪는 바람결에 / 올려다보는 인수봉 눈썹짬에서 / 흰 눈가루를 털어낸다.“

위 시는 김장호 시인의 <입춘>이라는 시입니다. 오늘은 24절기를 시작하는 그리고 봄 절기의 시작인 입춘입니다. 하지만, 아직 봄을 시샘하는 듯 날씨는 살을 에는군요. 입춘은 양력으로는 2월 4일 무렵인데 음력으로는 섣달에 들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하며, 윤달이 들어 있는 해에는 반드시 섣달(12월)과 정월에 입춘이 두 번 들게 되는데 이것을 복입춘(複立春), 또는 재봉춘(再逢春)이라고 합니다. 입춘 전날은 절분(節分)으로 불리고, 철의 마지막이라는 의미로 '해넘이'라고도 불리면서 이날 밤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 귀신를 쫓고 새해를 맞이하지요. '보리 연자 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말은 입춘이 지나도 추위는 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입춘엔 아홉차리와 적선공덕행이라는 독특한 세시풍속이 있습니다. 먼저 아홉차리는 각자 맡은 바에 따라 아홉 번씩 일을 되풀이하면 한 해 동안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액을 받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글방에 다니는 아이는 천자문(天字文)을 아홉 번 읽고, 나무꾼은 아홉 짐의 나무를 하며, 노인은 아홉 발의 새끼를 꼽니다. 계집아이들은 나물 아홉 바구니를, 아낙들은 빨래 아홉 가지를, 길쌈을 해도 아홉 바디를 삼고, 실은 감더라도 아홉 꾸리를 감지요. 또 밥을 먹어도 아홉 번, 매를 맞아도 아홉 번을 맞았습니다. 아홉 번 한다는 뜻은 우리 조상이 ‘9’라는 숫자를 가장 좋은 양수(陽數)로 보았기 때문이며, 가난해도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라는 교훈적인 세시풍속입니다.

또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은 입춘이나 대보름날 전날 밤에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을 꼭 해야 일 년 내내 액(厄)을 면한다는 풍속이지요. 예를 들면 밤중에 몰래 냇물에 가 건너다닐 징검다리를 놓는다든지, 거친 길을 곱게 다듬어 놓는다든지, 다리 밑 거지 움막 앞에 밥 한 솥 지어 갖다 놓는다든지 따위를 실천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우리 겨레의 더불어 사는 정신이 드러나는 아름다운 풍속이 일진대 오늘 우리 모두 적선공덕행을 실천하는 것이 어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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