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껏. 20×15. 2020.
욕심껏. 20×15. 2020.

병적일 만큼 넓은 공간을 좋아한다. 커피를 마셔도 작고 예쁜 가게보다는 넓고 천정이 높은 곳을 일부러 찾는다. 욕심 때문일까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 안이 채워지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여백이 좋아 넓은 공간을 좋아하는 것이다. 무언가로 가득 채워져 있는 공간을 보면 나는 몹시도 불편해한다. 공간을 물건에게 빼앗기는 것이 싫었다. 공간의 주인은 오로지 나여야만 했다. 그래서 물건 욕심보다 공간 욕심이 많았다. 

서른일곱 여름에 나는 아파트 생활을 접고 들녘이 펼쳐진 전원에 마음껏 집을 지었다. 넓게 잔디를 깔고 긴 돌담을 쌓고 큰 거실도 만들어 주었다. 천장까지 닿는 책장을 만들고 긴 테이블도 만들었다. 글을 쓰는 노트북과 읽고 있던 책과 마시던 차가 테이블 공간에 자유롭게 널브러져 있다. 그러고도 아직 빈 공간이 많이 남은 테이블을 바라보면서 팔을 뻗어 엎드려 보기도 하고 그 위에 올릴 수많은 이야기를 상상해 본다. 그래서 나는 욕심껏 그곳을 유희재(游喜齋)라 이름도 붙여 주었다. 

꽃샘추위가 왔던 이른 봄, 현관문을 잠시 열어둔 것이 파리를 안으로 들여 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넓은 공간과 파리의 동선에 순간 아찔한 불안감이 스쳤다. 읽던 책을 덮어 버리고 신경을 온통 파리에게로 맞추었다. 좁은 공간일 때는 동선 파악이 되더니, 공간이 넓어지니 파리의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위잉 하고 나타나 내 몸에 앉는 것이 여간 거슬리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파리 따위에게 괜한 승부욕이 생겨 버렸다. 손목의 스냅을 이용할 수 있는 얇은 잡지를 말아들고는 허수아비마냥 꼼작도 하지 않았다. 공간이 넓으니 기다리는 시간도 기약 없이 길기만 하다.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이 파리의 수준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여겼다. 한참 후 위잉 소리가 났을 때, 나는 간절히 빌고 있었다. 내 팔이 뻗을 수 있는 공간 안에 제발 앉아 주시라. 확률이 낮은 확률 싸움이다. 눈에는 보이지만 멀리 앉으면 도저히 내리칠 수가 없다. 허탕으로 내리쳐 파리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혹시 영민한 녀석이라면 다시는 근처를 오지 않고, 이 공간 안에서 소리만 내며 예민한 내 신경을 하루 종일 긁을 것이다. 그때다. 파리가 테이블에 앉았다. 다행히 덮어놓은 책 위로 고이 앉아 준다. 난 여전히 오른손에 잡지를 말아 움직이지 않고 있었고 드디어 파리가 내 공격선 안으로 들어와 준 것이다. 하나, 둘, 셋, 심호흡을 하고는... 탁! 성공이었다. 얼마나 한방을 노렸는지 모른다. 그렇게 형체 없는 파리의 사체를 닦아보기는 처음이다. 휴지를 두껍게 꺼내어 정중히 장사를 지내 주었다. 넓은 공간이 순간 고요함과 함께 평화가 찾아왔다. (베토벤교향곡 9번 합창 “환희의 송가”.......)

위이이이잉 뭐야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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