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장통(한글가로쓰기). 15×20. 2019.

입맛이 없다. 아니 먹고 싶은 게 없다. 사람들 속에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 틈에서도 허기가 진다. 어느 날부터 나에게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한 길을 삼십년 걸어오다 보니, 나는 성과를 하나씩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많은 말을 듣게 되고, 많은 것들을 보게 되었다.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때부터였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관계 속으로 깊숙이 들어 갈수록 나는 점점 “삼갈 신(愼)” 한 글자를 새겨야 하는 사람이 되어 갔다.

예전에는 마음에 맞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내 감정을 드러내고 화를 냈지만, 이젠 그러한 행동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져 버렸다. 내가 입으로 쏟아내는 말의 파장이 사람들에게 화를 미칠 것이 분명했다. 나는 점점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점점 손발이 묶여 버린 것만 같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예민한 작업으로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워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밤을 꼬박 지새우는 게 다반사가 되었고, 오롯이 혼자 견뎌내야 하는 시간들이 점점 일상이 되어 버렸다. 예민해지는 순간, 화들짝 놀라 전염병 환자마냥 나를 격리 시키고 있었다. 익숙해지고 깨달아지고 분명해질수록 나는 점점 까탈스러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주 많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머리와 가슴이 서로 타협하지 못할 때 나는 통증을 느낀다. 내 통증이 잦아질 때 누군가가 그러셨다. 예전처럼 누구에게나 다정한 사람이 되어 달라며 애정 어린 걱정과 서운함을 얘기 하신다. 그러고 보니 요즘, 내가 먼저 전화를 하는 경우가 줄어들었고, 카톡에서도 할 말 이외는 잘 주고받질 않았다. 예의상 하는 빈말이 너무도 가볍게 여겨졌다. 내 일상에 큰따옴표보다 작은따옴표가 점점 많아져 버렸다.
 
나의 변화를 감지한 사람들에게 속살을 보여준 것처럼 부끄러워 핑계처럼 주절이 늘어놓았다. “저는 지금 성장하고 있어요. 삶의 근육을 만드는 단백질도 필요하지만, 에너지인 비타민도 무척이나 필요로 해요. 삶의 근육은 제가 만들어 나갈게요. 당신은  언젠가 제자리를 찾아 돌아 올 저를 믿고, 저의 성장을 기다려 주세요. 그때는 무척이나 성숙한 사람이 되어 당신을 예전보다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통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두통, 치통, 요통 그리고 내가 혹독하게 겪고 있는 성장통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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