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삼조 시인.

최근 「말모이」라는 다소 낯선 말로 된 영화가 화제다. 개봉된 지 열하루 만에 170만여 관객이 관람했다 한다. ‘말모이’는 말을 모은다는 의미의 순우리말로 사전을 뜻한다. 우리의 민족 얼을 말살하기 위해 일제가 우리글로 된 인쇄물을 금하고 학교에서의 우리말 사용도 못하도록 한 1940년대의 암흑시기에 우리말과 글을 지켜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우리말사전을 만들기 위한 눈물어린 분투를 주 내용으로 하는 영화다. 실제로 1942∼1943년에 이 우리말사전 편찬에 매진하셨던 조선어학회 회원 33인께서 투옥되셔서 두 분은 모진 고문 끝에 순국하셨고 나머지 분들 중 주도적인 분들은 해방되고서야 풀려나신 조선어학회 사건이 있었으니, 이 영화는 이런 사실을 바탕에 깔고 있다.

흔히 말하는 활극도 아니고 기상천외한 상상력이 발휘된 영화도 아닌 순수한 역사적 사실을 풀어낸 영화가 이만한 반향을 일으켰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은연중 애국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고 우리가 일제강점의 아픈 역사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다. 더구나 말과 글은 우리가 일상생활을 통해 항시 사용하는 것으로 자칫 소홀히 하기 쉬운 소재인데도 이만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은 정말 의외라고 할 만큼 특별히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의 드러남이라 보아 틀리지 않으리라 믿는다.

따지고 보면 말과 글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 우리말이 이웃한 중국말 일본말과 다른 것은 우리가 오랜 옛날부터 자립하여 우리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 왔다는 역사를 웅변하는 것이고, 우리의 모든 정신과 문화가 대대손손 이 말에 깃들어 왔음을 뜻한다. 이 말을 그대로 적을 수 있는 한글은 어떤가. 만일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 곧 한글 제정을 주도하지 않으셨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직도 우리말과 일치하지 않는 한문을 쓰고 있을까. 아니면 우리말을 표현하기 위해 한문보다 더 복잡한, 신라 때의 향가를 기록하였던 향찰문자 같은 것을 쓰고 있을까.

현존하는 문자 중에서 세상의 복잡한 여러 소리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문자가 바로 한글이라고 한다. 그래서 유네스코에서 자기들 문자가 없는 나라나 겨레에 그들의 말소리를 적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문자로서 사용을 권하는 문자가 우리 한글이다. 이 익히기 쉬운 한글을 마음껏 이용하여 우리는 문맹률 1% 이하의 세계 유일한 나라가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지게 되었다. 우수한 문자를 가진 덕분에 아마도 우리 문화와 국력은 더욱 빛나며 더 멀리 뻗어나갈 것이다.

우려할 만한 일은 근자에 들어 우리말을 천박하게 하는 줄임말, 국적불명의 합성어 등이 무분별하게 쓰이는 일이고 외국어 중에서도 영어를 우리말 속에 많이 차용하여 쓰는 일이다. 그런 말이 쓰이게 되니 그 말을 기록하는 글도 이상하게 된다. 말과 글이 못되게 되면 그 속에 깃든 정신이 그 말과 글을 쓰는 사람들의 정신을 따라 망가지게 한다. 한시바삐 깨끗이 되어야 한다. 말과 글에 깃든 정신과 힘이 곧 겨레의 정신과 힘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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