母子(모자). 2019.

작품 값을 대신으로 귀한 가방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모호한 상황이라 작품 값에 손사래를 쳤더니 후에, 마땅한 가방이 없는 것을 아시고는 선물로 보내 오셨다. 상표 문외한인 내가 알바가 없어도 제법 알려진 상표일거다. 나는 가죽 디자인 하시는 선생님의 가방을 주로 들기에 그 가방은 꺼내 들 일이 없어 내내 보관해 두었다. 가죽이 상하지 않을까 마음의 짐이 되어 누구를 줄까도 여러 번 망설였다가, 주신 선물이라 그럴 수도 없어 장롱 깊숙이 넣어 두고만 있었다. 그러다 요즘 행사자리에 참석할 일이 많아져 그 가방을 꺼내 들게 되었고, 손톱으로라도 다칠까봐 조심조심 들고 다녀야 하는 게 영 내 스타일이 아님은 확실하다.

가방을 좌석 사이에 끼워 두었더니 자꾸 신경이 쓰인다. 뒤로 넘어가 버리거나 마시다 남긴 커피가 튈 것만 같다. 그 옆자리는 줄곧 아들의 자리였다. 유일하게 둘만의 시간을 차안에서 보내며 아직도 고등학생 아들 손을 비비며 등교를 시킨다. 차 앞문이 열리고 오늘도 늘 그렇듯 앉으려는 아들에게 한마디를 툭 던졌다.

“아들, 뒷좌석으로 가 주면 안 될까? 엄마의 이 폼 나는 가방이 불편해 하는 거 보이지? 난 이제부터 내 옆자리에 이 가방을 편안하게 눕히고 싶은데......”

“엄마,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죠? 제가 이젠 가방에까지 밀린 거지요? 하다하다 이젠 아들이 가방에까지 다 밀리네......”

그러고 생각해보니 난 아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듣는 사람이었다. 함께 드라이브를 하거나 쇼핑을 가다가도 누구에겐가 전화가 오면 서슴없이 얘기를 한다.

“아들, 여기에 내려 줄 테니 택시 타고 집에 가면 안 될까?”

“뭐라고요? 엄마 이건 저를 길바닥에다가 버리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요?”

“그러기는 한데.......난 지금 빨리 달려가고 싶거든.”

“세상에.......그렇다고 아들을 길바닥에 버리고 가는 엄마가 어디 있어요. 와~황당하다 못해 당혹스럽네. 엄마는 항상 자신이 우선이니까 내가 인정은 해 주지 뭐. 근데 이건 알아둬요. 다음에 내 여자 친구 생기기만 해 봐라. 엄마도 밀린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느끼게 해줄 거예요.”

“괜찮아 아들, 나도 그때 남자친구 만들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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