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다, ‘대학과 지역의 만남’④

지방자치시대, 도시의 경쟁은 치열하다. 더 살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가족(=시민)이 늘어나니까. 공교롭게 대학도 무한 경쟁이다. 인구절벽을 눈앞에 두고 생존을 걱정하는 곳이 여럿인 거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 했던가. 지역사회와 대학이 위기 극복을 위해 손을 잡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국내외 사례를 통해 사천에서의 ‘대학과 지역의 만남’ 그 가능성을 탐색해본다.
/ 편집자주                     
                      

 

▲ 시스타 사이언 시티의 요한 에드마크 대표가 일렉트룸과 시스타의 성공비결이 산·학·정 삼중 나선형 구조에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산·학·정 도시 ‘시스타 사이언스’


‘대학과 지역이 어떻게 만나 협력하고 상생해나갈까?’ 이 물음으로 들여다본 또 다른 해외사례는 스웨덴이다. 그리고 처음 찾은 곳은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북쪽으로 20km 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시스타 사이언스 시티(줄여 시스타).

시스타는 ‘스웨덴 최대 규모의 정보통신(ICT)산업지구’로 요약해 설명할 수 있다. 1970년대 중반, 수도 팽창에 고민하던 스톡홀름시와 무선통신 관련 사업부문과 연구소를 한 곳으로 통합하기 위해 적당한 지역을 찾던 에릭슨(ERICSSON)이 의기투합해 발전시킨 도시다. 지자체가 도시 인프라를 개발하자 대학과 연구소가 들어섰고, 결국엔 ICT기업들이 대거 찾아들었다. 지금은 에릭슨뿐만 아니라 IBM, 필립스, 오라클, 인텔, 노키아,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을 포함해 1200여 개의 정보통신기술 기업이 입주해 있다. 

20만 제곱미터 규모의 시스타가 ‘북유럽의 실리콘 밸리’로 성장한 데는 스톡홀름시와 에릭슨, 스웨덴 정부가 공동으로 설립한 재단 형태의 일렉트룸(Electrum)이 큰 역할을 했다. 1986년에 설립한 일렉트룸은 산·학·정 협력 네트워크의 허브 역할을 수행하며 구성주체들의 의견을 꼼꼼히 수렴하기로 유명하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대학, 기업을 연결시켜주는 창구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창업 관련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스타는 결국 일렉트룸의 자회사 같은 성격이다.

시스타 사이언스 시티의 요한 에드마크 대표는 시스타의 특성을 “산‧학‧정의 삼중 나선형 구조”라고 소개했다.

“지자체와 대학, 기업은 매우 강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그건 일렉트룸 이사회 구성에서도 알 수 있는데, 대학에서 3명, 기업에서 3명, 스톡홀름 시장, 시의회 4명, 시스타 운영진 2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돼 있다. 의장은 전통적으로 에릭슨 대표가 맡는다. 다양한 주체가 모였기에 정치적으로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산·학·정 협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고 합의가 잘 되는 편이다.”

 

#시스타 성공 비결은 ‘산업+주거’


시스타에 있어 대학의 기능은 특히 중요하다. 1988년 스톡홀름 대학과 스웨덴 왕립공대가 공동으로 설립한 IT 연구 개발 대학인 ‘캠퍼스 시스타’가 그 중심에 있다. 7000명 이상의 학생이 참여하고 있는 ‘캠퍼스 시스타’는 해마다 우수인력을 배출하는 등 시스타의 핵심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캠퍼스 시스타’는 IT 관련 학과뿐만 아니라 전자정부 연구, 시민친화정책 개발 연구, 사회 공공편의 시스템 연구를 위해 다양한 학과를 운영하며, 지자체와 기업에 다양한 창업 아이템과 연구 성과를 제공하고 있다.

시스타 내에 있는 고등학교도 아이디어 뱅크 역할을 한다. 이곳 고등학생 300여 명은 기업들과 활발한 교류를 이어가는데,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논문을 쓰면 회사는 이를 받아들이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형식이다. 학생들로선 일찌감치 창업에 눈 뜰 기회를 갖는 셈이다.

일렉트룸의 또 다른 자회사인 혁신성장 주식회사 스팅(STING)은 이들에게 창업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다. 스타트업(=혁신형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초기 창업 기업) 촉진을 위해 각종 법률, 회계 자문을 하고, 인큐베이터, 비즈니스 센터, 벤처자금 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스타의 성장에서 눈여겨 볼 점은 산‧학‧정 협력 말고 또 있다. 바로 주거환경에 대한 투자다. 시스타 사이언스 시티의 경우 개발 초기엔 ‘실패한 사이언스 파크’라 스스로 인정할 정도였다는 것. 고용자 3%만이 도시 내 거주하고 그 외에는 스톡홀름 같은 인근 대도시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시스타는 어떤 대책을 세웠을까. 다시 요한 에드마크 대표의 얘길 들어보자.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도시를 만드는 일에 기업이나 학교만으론 부족했다. 아무리 재능 있는 인재를 영입하고 싶어도 주거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가족들과 함께 들어올 수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좋은 주거환경을 가꾸는 일에 힘썼다. 시스타에는 학교와 집이 한 건물에 있고, 쇼핑몰도 같이 있다. 다 기업과 연구원들이 원하는 대로 행한 결과다.”

결국 기업과 지자체가 협력지원센터를 설립하고 주거공간과 각종 서비스 시설, 편의시설을 지으면서 인구가 유입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주거환경 문제로 기업 입주와 일자리 창출에도 불구하고 인구 유출을 지켜봐야 하는 사천시로선 새겨볼 대목이다.

 

▲ 일렉트룸의 자회사인 스팅은 젊은이들의 창업을 지원한다.

 

#웁살라 혁신의 뿌리 ‘스툰스’


시스타 사이언스 시티가 대기업 에릭슨을 중심으로 산‧학‧정 클러스터를 조성했다면 웁살라는 웁살라대학과 스웨덴농과대학을 중심으로 중소기업들이 협력을 이뤄 빛을 보는 곳이다.

스톡홀름에서 북서쪽으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웁살라는 1900년대 중반까지 인쇄업, 기계제조, 철공업 등 공업이 주를 이뤘으나 후반에 접어들면서 첨단산업이 주요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변화에 힘입어 1998년 지역대학, 지방정부, 기업들이 스툰스(STUNS)라는 재단을 조직했고, 웁살라를 생명과학에 특화된 지역으로 개발하기로 뜻을 모은다.

하지만 웁살라 생명과학단지 추진은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 경기 침제 등 여파로 바이오산업의 지원이 줄어들었고 연구원들이 연구개발 자금 부족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연구원들의 어려움은 곧 과학단지 전체의 위기를 불러왔다.

웁살라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웁살라와 대학, 스툰스는 협의를 거쳐 200여개 기업 지원, 경영활동, 창업자금, 사업파트너 매칭, 매출증진, 마케팅 등을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스타트업이 기술개발에만 집중되도록 생태계를 조성한 셈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곳이 ‘웁살라혁신센터(UIC : Uppsala Innovation Centre)’다.

UIC는 국내 대학이 운영하는 창업보육센터 같은 기관이다. 스툰스가 25% 지분을 차지하고 그 외 웁살라(지자체), 스웨덴 농과대와 웁살라대 지주회사들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UIC 프로그램 출신 기업 10개 가운데 9개가 시장에서 살아남을 정도로 강한 경쟁력을 자랑한다. UIC가 배출한 스타트업들이 낸 세금은 초기 지원받은 자금의 10배 이상이 될 정도로 성장했다. UIC가 지역 경제에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 스웨덴 웁살라 지역의 혁신을 주도하는 웁살라대학 전경.

 

#웁살라혁신센터의 3단계 전략

초기 UIC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창업보육센터의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설비나 자금 지원에 그쳤던 소극적인 방식은 창업기업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스타트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금 지원이 아니었다. 기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키워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경영 상담과 경험 많은 선배들의 조언,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 애로사항에 대한 자문 같은 것들이었다. 2004년 UIC는 시스템을 완전히 정비했다. 경험이 풍부한 CEO급 임원 70여명을 UIC 네트워크에 두고 스타트업을 도와주도록 했다.

UIC에는 현재 대학, 연구소, 기업, 투자회사, 특허지원 기관, 국제교류지원 기관, 창업지원 기관 등의 구성주체가 한 곳에 집적해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 더 유기적인 소통과 협업을 위해서다.

UIC 창업보육시스템은 총 세 단계로 진행되는데, 먼저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개발하고 실행할 지를 돕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 아이디어가 어느 정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수준이 되면 이를 기업(파트너사)에 연결해주는 것이 두 번째 단계다. 이후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사무실, 컨설팅 서비스, 각 분야 전문가를 멘토로 연결시켜주는 단계가 마지막 세 번째 단계다.

웁살라 과학단지는 지방정부와 함께 대학이 지역 인재들의 창업 생태계를 체계적으로 만들어준 성공 사례로 꼽힌다. 여기서 대학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바로 아이디어를 가진 대학 인재와 연관된 UIC 기업이 만날 수 있도록 돕고 이후에는 계약까지 이어지도록 지원하고 연결하는 역할이다.

웁살라대학 혁신사무소 조나스 애스트롬 소장은 “대학은 연구가 활발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수많은 아이디어, 수많은 연구 결과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웁살라 과학단지의 성공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면서 “대학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참여함으로써 혁신 수준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을 끌어들이는 자석의 역할을 할 수 있고 인재 영입에도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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