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길을 묻다, ‘대학과 지역의 만남’②

지방자치시대, 도시의 경쟁은 치열하다. 더 살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가족(=시민)이 늘어나니까. 공교롭게 대학도 무한 경쟁이다. 인구절벽을 눈앞에 두고 생존을 걱정하는 곳이 여럿인 거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 했던가. 지역사회와 대학이 위기 극복을 위해 손을 잡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국내외 사례를 통해 사천에서의 ‘대학과 지역의 만남’ 그 가능성을 탐색해본다. / 편집자주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31일 오전. 서울시 용산구에 있는 한 전통시장 상인회 사무실에서는 이색 풍경이 펼쳐졌다. 젊은 대학생들이 상인들을 대상으로 매대(=판매대)와 어닝시스템(=판매대에 비와 빛을 막아주는 가림 시설) 개선 방안을 발표하는 모습이었다. 상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하거나 때론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연구수업 결과물 발표 같기도 하고 사업 제안을 위한 브리핑 같기도 한 이 모습은 실제로 이 두 가지 성격을 모두 띠고 있었다. 서울시와 용산구청이 숙명여대와 손을 잡고 진행하는 캠퍼스타운 조성 사업의 연장선이면서 숙명여대와 용문시장이 뜻을 모은 ‘2018 전통시장대학협력사업’의 일환이기도 했다. 이날 4개 팀으로 나뉜 숙명여대 학생들은 산업디자인과 천하봉 교수의 진행 아래 ‘용문시장 활성화’를 주제로 한 다양한 연구결과물의 중간발표를 하고 있었다.

이들의 노력은 두 달 뒤 빛을 봤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진흥공단이 주최한 ‘2018 전통시장대학협력사업 우수결과물경진대회’에서 영예의 1위(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를 차지한 것이다. 매대와 어닝 말고도 조명장치, 시장 캐릭터와 표지판 디자인 등도 호평을 받았다. 대학과 주최 측은 올해 안으로 학생들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제품을 개발해 용문시장 상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예정이다.

이번 일은 대학과 지역, 지역과 대학이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길을 보여준 좋은 예로 평가받는다. 물론 여기에는 전통시장대학협력사업이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역시 서울시의 캠퍼스타운 조성 사업이 깔려 있음이다.

 

▲ 서울시 캠퍼스타운 조성 사업의 대표적인 예가 숙명여대와 용문전통시장에 있다. 숙명여대는 대학이 가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용문시장에 활기를 불어 넣는 작업에 한창이다. 사진은 숙명여대 학생들이 상인들 앞에서 자신들의 연구결과물을 발표하는 모습.

 

용문시장과 캠퍼스타운의 만남
숙명여대는 2016년 12월에 서울시의 캠퍼스타운 단위형 사업 대학으로 선정돼 지난해 5월부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역-숙명여대-효창공원-용문시장-용산전자상가-한강공원’의 연결로 용산구의 도시재생을 꾀한다는 기본 목표 아래 숙명여대는 용문시장에 활력을 불어 넣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1965년에 문을 연 용문시장은 여느 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대형 마트나 편의점 등에 상권을 빼앗긴 채 오늘날 활력을 잃었다. 주요 고객은 60대 이상의 노령층. 숙명여대와는 직선거리로 1km남짓 떨어졌다. 따라서 상인들은 젊은 고객들의 발길이 더 늘어나길 바라고 있었다.

용문시장 활성화를 위해 숙명여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문제점 파악이다. △용문시장 고유의 특화상품과 콘텐츠 부족 △상권개발 및 관광객 유입 위한 대응전략 부족 △고객 감소 및 고령화 △일부 상점가 쇠퇴로 시장 활기 저하 등이 문제점으로 꼽혔다. 이어 숙명여대의 가용 자원을 파악했다. △학생공모전을 통한 아이디어 창출 △교수진의 전문지식과 역량 활용 △지역 연계형 교과목 운영으로 아이디어 실행계획 도출 △한국음식연구원 등 교내 유관기관 활용 등이 유용하게 떠올랐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공모전’과 ‘지역 연계형 교과목 운영’이다. 실제로 숙명여대는 용문시장과 연계한 몇 개의 과목을 개설했다. 이로써 학생들은 수업을 통해 용문시장의 문제점을 더 자세히 파악하고 개선점을 찾는 일에 집중했다. 경영학과, 산업디자인학과, 공예과 등이 적극 참여했다. 용문시장 활성화를 위한 아이디어 공모전에는 더 다양한 학생들이 참여했다. 2회째를 맞은 올해는 99개 팀에 244명이 지원할 정도.

과목 개설과 공모전에는 서울시의 지원금이 투입됐다. 학생들에겐 수업과 공모전을 통해 학점도 따고 사업 아이템도 발굴하는 ‘두 마리 토끼’인 셈이었다. 나아가 공모전 참가 우수 학생들에겐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기회까지 주어졌으니, 이젠 창업을 기대할 정도다.

공모전에서 눈에 띤 것 중 하나가 전래동화와 용문시장의 결합이다. ‘젊은 주부들을 시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어린 아이들의 호기심부터 사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이 아이템은 결국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전래동화 캐릭터 복장을 한 채 주기적으로 용문시장을 홍보함으로써 “젊은 고객을 유치하는 데 실질적인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상인회로부터 듣고 있다.

 

▲ 대형마트와 편의점에 밀려 상권을 잃어가는 용문전통시장이 최근 숙명여대의 캠퍼스타운 조성 사업으로 생기를 찾고 있다.

 

대학 자원 나누고 지평도 넓혀
2년째에 접어든 숙명여대의 ‘용문시장 활력 찾기’ 도전의 중심에는 숙명여대캠퍼스타운사업단이 있다. 사업단은 사업 초기부터 용문시장 가까이에 캠퍼스타운 거점센터(용산 나진전자월드)를 두고 상인‧지역주민들과 소통을 넓히고 있다. 센터는 숙명여대 학생들의 발걸음을 용문시장으로 이끄는 기능도 한다.

“처음엔 두려움도 있었어요. 전통시장 활성화를 주제로 다양한 지원사업이 있었지만 지원금이 끊기면 처음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죠. 그런데 아직 초기지만 (용문시장이)조금씩 바뀌고 있음을 느낍니다. 근본 체질을 바꾸는 게 우리의 목푭니다.”

8월 31일 거점센터에서 만난 설원식 단장(=경영학부 교수)의 얘기다. 그는 사업의 전반적인 진행에 있어 대학 내 자원을 적절히 활용한다는 점을 의미 있게 꼽았다. 뛰어난 교수와 학생들을 염두에 뒀음이다.

“대학 교수들이 사실 다 전문가들이잖아요. 경영 컨설팅에서 문화예술, 디자인까지 영역도 다양합니다. 학생들로선 실전 경험을 쌓는다는 점에서 더없이 좋죠. 취업은 물론 창업에도 도움이 될 거라 믿어요.”

함께 만난 사업단 조종숙 부장은 2년간의 구체적인 사업들을 소개했다. 사업단은 그 동안 설문과 인터뷰를 통해 상인들에게 특색 있는 명함을 제작해주는 일을 해왔다. ‘용용산문’이란 소식지도 발행한다. 또 용문상인대학을 열어 상인들이 창업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강연 겸 조언을 하는 시간도 가졌다. 상인들의 요청에 따라서는 중국어 교실도 열었다. 시장을 찾는 중국인 고객들을 고려한 프로그램이었다. 이밖에 용문시장 음식재료로 도시락을 만들어 대학에 공급하는 시범사업도 펼쳤다. 모두가 대학과 지역사회의 상생에 초점을 맞춘 노력들이었다.
이날 공모전에서 전래동화를 활용한 상권 활성화 프로그램을 제안했던 조유진 학생(사회심리학 14학번)은 경험을 살려 창업으로 이어갈 생각을 밝혔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사부터 기획, 실행까지 해봤으니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최대치를 얻었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론 ‘내가 지역 발전의 주체가 될 수 있구나’ 생각되고, ‘청년혁신가가 되어보면 어떨까’란 생각도 들어요. 창업도 결심했어요.”

숙명여대는 얼마 전 끝난 2018 청년창업페스티벌에서도 참가 학생들이 가장 뛰어난 평가를 받는 등 캠퍼스타운사업의 성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대학이 가진 자원을 지역사회와 나누면서 다시 대학의 활로와 지평도 넓히는 셈이다. 숙명여대가 이 사업으로 서울시로부터 지원받는 금액은 내년까지 최소 24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 고려대의 캠퍼스타운 사업은 청년창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진은 안암동에 있는 한 ‘스마트 스타트업 스튜디오’.

 

청년창업 주력하는 안암동
숙명여대가 캠퍼스타운의 단위형 사업을 지원받는다면 고려대는 종합형 사업을 지원받는다. 안암동 캠퍼스가 중심 무대인 이 사업에는 서울시가 2020년까지 100억 원을 지원한다.
사업을 주도하는 곳은 고려대 안암동 캠퍼스타운추진센터. 서울시와 성북구, 고려대가 공동으로 설립했다. 서울시가 예산 지원을, 성북구가 행정지원을 맡는다.

고려대의 경우 가장 주안점은 청년창업 활성화에 있다. 일자리 창출을 통해 안암동 거주민을 늘리면서 지역사회 활력도 되찾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창업경진대회를 4회 개최했다. 또 일종의 창업 스튜디오인 ‘스마트 스타트업 스튜디오’ 8곳을 조성했다. 이 창업 스튜디오는 고려대가 지역 내 유휴공간을 확보해 보증금을 지원하면 서울시가 임차료와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해 조성된다. 스튜디오 1곳에는 3~4개의 업체가 들어선다. 고려대 출신이 아니어도 입주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도 특징이다. 센터에 따르면, 이들 스튜디오에서 특허출원 9건, 상표등록 8건, 시제품 제작 23건 등의 실적을 냈다. 

고려대는 청년 창업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창업 희망자에게는 팀별로 300만 원의 창업활동비를 지원하는가 하면 회계법과 특허전략 등 창업실무교육도 지원한다. 사업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지역관리회사(CRC) 설립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안암동 캠퍼스타운 추진센터 김동현 사무국장은 “안암동은 ‘서울시 캠퍼스타운 1호’로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청년창업 특화지구로 거듭날 것”이라며 기대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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