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 포스터.

한국영화계에는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전설적인 작품이 있다. 충무로 영화계를 꽁꽁 얼렸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다. 2002년 당시 (지금도 거액이지만) 천문학적 제작비인 110억 원을 쏟아 부었음에도 전국 관람객은 14만 명에 불과했다. 이 처참한 상황을 목도한 이후 투자자들은 충무로를 향한 발길을 끊었고,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는 한 동안 일어서질 못했다. 그런 영화가 또 나타났다. 김수현이라는 스타이자 배우를 내세운 <리얼>이 그렇다. 아무래도 역대급 전설이 될 것같다.

비주얼텔링을 강조하며 개연성 없는 스토리의 책임을 피해가고자 하였으나, 개연성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있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혹자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필두로 <클레멘타인> <7광구> 등 희대의 망작을 열거하고 비교선상에 올리던데, 오히려 비교하는 그 자체로 미안할 지경이다. 실제로 IMDM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두고 'CG가 화려하고 개연성이 좀 부족하긴 해도 볼 만한 B급 영화'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으니까. 이쯤 되면 진짜 투자금 100억 원의 행방을 묻고 싶다.

사실 라인업 자체는 훌륭하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이후 김수현의 복귀작이라는 화제성에 더해서 연기력 지존으로 불리는 이성민과 성동일, 여러 의미로 아이콘이 된 설리(최진리)가 가세했으니 말이다. 다만 1인 2역을 하는 김수현 원톱으로는 137분이라는 긴 시간을 텔링하기에 역부족이다. 비주얼만 따지면 거액을 들인 티는 확실히 나지만, 화려한 비주얼은 도무지 이야기와 섞이질 않는다. 물과 기름도 제대로 섞으면 멋진 그림이 되는데, 섞을 능력이 없는 건지 의지가 없는 건지 각자 따로 놀기 바쁘다. 그렇게 무려 137분, 지켜본 관객이 오히려 더 대단하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투자 제작까지 오로지 스타 ‘김수현’에 기댄 <리얼>은 거대자본과 톱스타도 졸작 앞에서는 비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김수현이라는 캐릭터는 스타와 배우의 정체성을 동시에 가진 몇 안 되는 인재이며, 나이까지 감안한다면 한국영화에 기여할 일이 더 많은 배우다. 따라서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잔인한 흑역사가 될 것이 분명한 <리얼>을 어떻게 떨치느냐가 관건이다. 그 동안 왕, 외계인, 간첩 등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며 좋은 평을 이끌어냈듯이 망작에 주저앉지 말고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채워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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