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되풀이... 두량농공단지 폐수처리시설 없어

사천읍 두량리 두량농공단지에서 21일 아침 시커먼 물이 흘러나와 농민들의 애를 태웠다.
“아침 일찍 들에 나왔는데 시커먼 물이 흘러가는 기라. 그 물이 논에 흘러 들어왔다면 올해 수박농사는 끝장이야. 가끔 이런 일이 있는데, 시에 연락해도 뾰족한 답도 없고 큰일이라.”

경남 사천시 사천읍 두량리 두량농공단지 아래에서 수박농사를 짓는 김기철(68)씨는 오늘 새벽 5시30분께 들에 나왔다가 깜짝 놀랐다. 평소 맑은 물이 흐르던 개울에 시커먼 물이 흘렀기 때문이다. 다행히 논물이 잘 빠져 김씨의 논으로 역류되진 않았지만 아찔한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전 10시30분, 또 다른 농민 박성권씨의 제보를 받고 뒤늦게 현장을 방문했다. 문제의 개울에는 시간이 흐른 탓인지 짙은 흙탕물만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수면에는 여전히 기름띠가 형성돼 있었고, 개울가에 난 풀에는 거뭇거뭇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개울은 두량농공단지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 개울은 중선포천으로 흘러들고 있었는데, 겉보기에도 개울물이 훨씬 더 검은 빛을 띠었다. 반면 문제의 개울 바로 아래 개울은 같은 흙탕물이지만 훨씬 밝은 빛을 띠었다.

21일 오전 11시, 문제의 개울에는 검게 변한 풀과 낙엽들만이 얼마 전 폐수가 흘렀음을 말해주고 있다.
김씨와 박씨의 얘기를 종합하면 적어도 새벽 5시30분 이전부터 아침 7시30분까지는 문제의 개울에 시커먼 폐수가 흐른 것으로 보인다. 이후 더 많은 비가 쏟아지면서 색은 점점 옅어졌다.

박씨는 이번과 유사한 사례가 몇 차례 더 있었다고 말했다. “한 번은 이번과 비슷하게 새까만 물이 흘러갔고, 어떤 때는 절삭유로 보이는 우윳빛 물이 흘러간 적도 있다.”

폐수의 개울 유입이 일회성 사고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두량농공단지의 폐수는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폐수처리시설이 따로 없다. 두량농공단지에는 주로 금속가공업체들이 입주해 있는데, 생산 공정에서 폐수가 많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수처리시설을 갖추지 않았다는 게 사천시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라는 얘기다.

곤양농공단지도 두량농공단지와 마찬가지로 금속가공업체들만 모여 있어 폐수처리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다. 반면 송포/사남농공단지와 일반산업단지에는 폐수처리시설이 갖춰져 오수와 빗물이 분리되고 있다.

두량농공단지 아래에서 농사를 짓는 박성권 씨가 폐수유출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러다보니 두량/곤양농공단지는 가끔씩 큰 비가 내릴 때마다 민원이 생긴다. 사업장 내 쌓여 있던 쇳가루와 절삭유 등이 빗물에 섞여 개울로 흘러들기 때문이다.

사천시청 환경보호과에서 폐수배출감독업무를 맡고 있는 신경민씨에 따르면 일부 업체는 삼단분리조를 설치해 초기 우수를 분리하고 있지만 많은 비가 내릴 경우는 무용지물이란다. 그는 “평소 우수 관로 청소를 당부하고 있지만 강제할 수 없어 지도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두량농공단지 내 15개, 곤양농공단지 내 7개 입주업체는 사업장 내 폐수가 발생하더라도 특별히 위탁처리 하지 않는 한 빗물과 함께 개울로 흘려보낼 수밖에 없는 조건인 셈이다.

한편 이번의 경우 특정 업체에서 고의로 폐수를 흘려보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목격자들 주장에 따르면 방류량이 엄청나기 때문에 단지 공장 바닥에 쌓여 있던 것이 유입됐다고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량농공단지 입주업체인 A사는 지난해 가을, 고의로 절삭유를 흘려보내다 들켜 행정처분을 받은 적도 있다.

공단폐수유출 신고를 받은 사천시 환경보호과에서는 1차 현장 확인을 했으며 농공단지 개별 업체들을 살피는 일은 내일 진행할 것이라 밝히고 있다. 오랜 만에 큰 비가 내리자 하루 종일 관련 민원이 폭주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두량농공단지에서 흘러나온 물과 중선포천 본류 물의 빛깔에 차이가 남을 알 수 있다.
문제의 개울 바로 아래 개울물은 밝은 빛을 띠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