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액운 물리고 복비는 동제 올려

▲ 제관과 축관의 상신장 제사 후 가산마을 농악패가 풍악을 울리고 있다.
사천 축동면 가산마을은 조창(조선시대 보리, 옥수수, 조 등 현물을 중앙으로 수송하기 전에 모아두었던 창고와 이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인해 한때는 시장이 서고 선원들이 오가며 다른 지방과의 교역이 활발했던 큰 마을이었다. 지금은 작은 촌락에 불과하지만 당시에는 경남서부 7개 군현의 곡물이 모여들어 사람도 마을도 윤택한 시절을 보냈다.

지난 5일 정월대보름을 맞아 가산오광대 전수관 천룡제당에서 치러진 가산오광대 천룡제는 그 시절 마을의 현감들이 모여 곡물이 무사히 중앙청으로 도착하기를 빌었던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지금도 마을 어귀와 당산나무 아래에 남아있는 석장승들 역시 곡물들과 조창을 수호하기 위해 세웠다고 전해진다.

현재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3호인 가산오광대가 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실은 마을의 제사였던 천룡제와 함께 호흡해 왔기 때문이다. 제사가 끝나고 나면 마을 사람들이 각자 탈을 쓰고 오광대 연희를 펼쳤던 것이 지금의 가산오광대로 이어져 온 것. 사천가산오광대보존회가 매년 총 주관을 맞아 제를 올리는 것도 이 둘의 ‘막역함’에 이유가 있다.

올해로 255회째를 맞은 천룡제 역시 사천가산오광대보존회 한우성 회장이 모든 주관을 맡고 보존회 회원인 박재기 씨가 제관, 한남주 씨가 축관을 맡아 제를 올렸다. 이때 제관을 맡은 자는 그 가정에 흉길사가 없이 깨끗한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석장승들에 제를 올릴 때 준비한 음식은 금기를 지키며 섣달그믐부터 모든 부정한 일을 삼가며 정결한 마음으로 준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오전 10시 천룡제당에서 성황신께 제사를 지냈고, 보존회 손예랑 사무국장이 진혼가를 올렸다. 제당에서 식이 끝나고 제관과 축관을 맡은 이들이 마을 당산나무 아래 있는 상신장과 마을회관 옆 마을 입구의 하신장을 찾아 제를 지냈고 방갈새미, 너머새미 제사도 이어졌다.
▲ 당산나무 아래 상신장에 제사를 올리는 모습.


이후 지신밟기와 파지 굿, 어울림 마당으로 행사와 함께 오후 5시에는 마을 앞 들판에 마련한 달집에 불을 지펴 액운을 태워보냈다.

한우성 회장은 “본래 정월대보름에 천룡제를 지내고 나면 달밤에 횃불 들고 모닥불 피워놓고 오광대 놀이를 했다”며 “공연을 한 번 하려면 보존회 회원 35명이 움직이는데 매번 무사하게 넘기고 불행이나 액을 막아달라고 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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