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여쭤보고 진행해야 할 것 같아서 전화 드렸습니다.”

퇴임한지 서너 달 지난 그 해 연말쯤에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학교의 교무부장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다. 관심 밖의 일이라 잘 몰랐지만 퇴임 교원들은 학년말에 몽땅 모아 훈·포장을 주는 모양이었다. 학기 중간인 8월 말일 날짜로 난 퇴임을 했으니, 시기상 내 후임 교장이 훈·포장 상신을 하게 되고 이 절차는 관례적이고 의례적이라 그냥 진행될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김 부장은 당사자인 나에게 문의해 보아야 할 사항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아이고, 참 다행이오. 당신이 전화 안했으면 나도 모르게 덜렁 이름이 올라 훈·포장이란 것을 받을 뿐 했구먼. 새로 온 교장에게 절대로 훈·포장 상신은 하지 말라고 하시오. 현 대통령 명의의 표창 같은 것은 받을 의향이 전혀 없으니 말이오.”

퇴임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명박 씨다. 지난 정부에서 벌어졌던 엄청난 부실 덩어리들이 쏟아지고 있다. 박창근 교수(관동대)는 4대강 사업의 부작용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기왕에 투입된 22조원의 사업비보다 3배나 되는 65조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고기영 교수(한신대)의 추정에 의하면 자원외교는 약 56조원의 손실을 우리 국민에게 남겼다고 한다. 해외자원개발이란 미명하게 진행된 이것들은 ‘만사형통’ 이상득과 ‘왕 차관’ 박영준이 주도한 것이다.

국정감사에서는 ‘사자방’이란 괴이한 신조어가 등장했다. ‘사대강, 자원외교, 방산비리’에서 나온 말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의혹들과 국민 피해액이 산출되어 나올지 모르겠다. 또 지난 정부 5년간 부자감세로 90조원의 세금이 덜 걷혔다고 한다. 앞의 노무현 정부에 비해 그만큼 나라 국고가 비었다는 뜻이다. 명색이 어른이란 정치인들이 지금 한창 정쟁거리로 만들고 있는 3-5세 영아 보육예산(누리교육과정), 17개 각 시·도 학교급식예산 모두 합해도 6조5천억에 불과하다. ‘사자방’에 이미 탕진했고, 앞으로 쏟아 넣을 예산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돈이란 돌고 도는 것이다. 어디론가 빠져나간 국부는 결국 국민피해로 나타날 게 뻔하다. 요즈음 가계 빚이 눈 더미처럼 커지고 서민들 주름살이 점점 더 깊게 패여 가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12일 경기도 하남시에서 측근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라 경제가 어려운데, 자원외교를 정쟁으로 삼아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한다. 이런 것을 두고 적반하장이라고 한다. 여러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지난 MB 정부의 비리에 대한 국정조사에 찬성하고 있다는데 이 일을 어찌할 것인고! 국민들 보고 정쟁하지마라고 훈수를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이 전 대통령의 한가한 말씀(?)을 듣고 문득 퇴임 학교 교무부장이 생각났다. 받고 싶지 않은 훈·포장을 받지 않아도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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