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복직한 학교는 첩첩 산골에 있는 작은 마을에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아 국도로 접어들면 곳곳에 ‘~곡’이란 이름이 붙은 마을이 줄줄이 나온다.

곡(谷)이란 골, 골짜기를 뜻하니 얼마나 산골인지 짐작할 만 하다. 겨울에는 찬 골짝 바람 때문에 사천보다 기온이 평균 10도 정도 낮았다. 아침이면 아이들은 삼삼오오 떼를 지어 고개 마루를 타고 왔다.

윗마을은 장차 댄스가수가 희망인 여드름쟁이 남학생이 대장이 되어 건들거리며 내려 왔고, 아랫마을은 덩지가 듬직한 여학생이 중심이 되어 노래를 부르며 올라오곤 했다. 해맑은 시골아이들을 맞이하는 아침은 언제나 싱그러웠다.

아이들은 점심시간에 날씨만 허락되면 잔디밭에 나와 매일 소풍 온 것 마냥 재잘거리며 함께 도시락을 나누어 먹었는데 그 모습이 자못 흥미로웠다. 시골 사람들 사정이야 뻔해서 도시락 찬이야 김치나 짠지였고 멸치 볶음 정도면 상찬이다.

그런데 학교의 의뢰를 받아 식당에서 보내 온 도시락은 찬합에 따뜻한 밥을 고슬고슬 담고 이런 저런 반찬을 담았는데 보아하니 돼지고기 볶음도 있고, 계란말이도 한 줄 놓여 있고, 나물도 한두 가지 소담하게 담겨있다. 더욱이 따뜻한 국물도 따로 담아오니 그야말로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바로 유상급식과 무상급식이 한 자리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가가 싼지 후한 인심 덕분인지 학교에서 지급하는 백반 정가의 2/3 정도의 가격으로 훌륭한 도시락을 만들어 공급했는데, 아이들은 집에서 싸온 궁박한 반찬과 식당에서 보내온 풍성한 찬을 스스럼없이 나누어 먹고 있었다.

무상급식 도시락을 받는 아이들이나 집에서 도시락을 싸온 아이나 다들 가까운 친인척이고 멀어도 이웃사촌들이다. 기초생활수급자니 차상위계층이니 하는 것은 행정차원에서의 분류일 뿐이고 집안 형편이 어려운 것은 다 마찬가지였기에 위화감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빈부격차가 큰 풍요로움 보다 빈한하나 공평한 삶이 더 행복하기 마련이다. 아이들의 행복지수가 분명히 높을 이 학교는 내가 있을시 분교로 축소되었다가 떠나 온지 몇 년 후에 결국 폐교되어 사라져버렸다.

학교 급식 예산 지원을 경남도와 사천시에서 중단할 모양이다. 대한민국 군대에서 부잣집 병사라고 돈 받고 밥 준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병역의 의무나 교육의 의무나 다 동등한 국민의 의무이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돈 받고 밥을 줄 수는 없는 일이니까 이제 옛날로 돌아가 각 가정은 아이들 도시락을 싸야 할 것 같다.

도시락 찬으론 멸치가 단골이니 우리 지역 수산업으로서는 대박이 될지도 모르겠다. 학교급식 파동을 보고 문득 도란도란 거리면서 함께 도시락을 나누어 먹던 그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시골아이들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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