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시절, 얼마 전 떠나 온 전임 부대에 전화를 했다.

“전 중위, 요즈음 야간 근무 올라오면 커피 열심히들 잘 마시고 있나?”
“아. 그럼요. 이 대위님, 커피가 달랑달랑 하다는데 더 보급해 주라고 해 주세요.”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사연이 있다. 얼마 전 단장이 새로 부임해 오면서 생긴 현상이다.
조종사 출신인 단장은 사실 이 관제부대가 생소하다. 그래서 참모들에게 물어 보았다.

“예하 부대에서 당장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이요?”
“심야 근무 중에 장병들이 자주 졸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실 참 어렵습니다.”
“아니, 레이더 근무 장병들이 존다는 것은 초병이 초소에서 자는 것과 같은 것 아니오? 더욱이 전투가 벌어지면 야간에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은데 반드시 해결해야지, 무슨 방법 없소?”

참모들은 묵묵부답이다. 속으론 난제 중의 난제를 끄집어낸 고지식한 작전 참모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 때 신경이 조금 예민한 편인 보급 참모가 별안간 묘안이 생각이 난 모양이다.

“장군님, 저녁에 커피를 마시면 어떻게 됩니까? 아무리 자려해도 잘 수가 없잖습니까?”
“그렇지! 그런 방법이 있구먼. 야간 근무자들은 의무적으로 커피를 많이 마시도록 조치해요!”

당장 부대 근처 밀수업자들이 된서리를 맞았다. 70년대 당시에는 미군 부대에서 빠져나오는 보급품들이 일상적으로 거래되고 있었고 커피 같은 것은 밀수품 축에도 들지 못하는데 헌병들이 커피 관련 제품만 압수해 간 것이다.

단속이 있긴 했으나 커피를 콕 찍어 털어가는 일은 없었기에 밀수품을 거래하는 업주들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이 커피들의 용도는 곧 부대 안팎에 널리 알려졌다.

“그래 전 중위. 커피 마시고 야근하니 근무가 잘 되는 모양이지?”
“네, 요즈음은 설탕 듬뿍 넣은 따끈한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잠이 안와요. 다들 작전실에 올라오면 한 사발씩 마시고 폭 자지요, 하, 하, 커피 더 보내 주세요!”

쇠를 삶아 먹어도 소화를 시켜낸다는 20대 한창의 청년들에게 커피 한 잔으로 잠을 쫓는 발상은 한마디로 웃기는 일이었다. 모두 다 아는 일인데 장군과 참모들만 몰랐던 것이다. 당연히 이 획기적인 개혁책은 유야무야되고 커피 밀수업자들도 두발 뻗고 자게 되었다.

전시작전권 환수가 또 다시 무기 연기된단다. 일찍이 노태우 정권 때부터 군사주권 회복 차원에서 이념을 떠나 추진해온 사안이다.

국방예산이 북한보다 30배나 많은 상황에서 자주 국방이 안 된다는 고백이다. 그러면 우리 손으로 오롯이 나라를 지킬 수 있을 때가 언제란 말인가? 문득 기막힌 이 현실을 보면서 초급 장교 시절 한 촌극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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