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중반 당시 대부분의 지방 학교가 그러했듯이 중학교 수학여행을 서울로 갔다. 창덕궁에 갔을 때였다.

영화 촬영을 하다가 잠시 촬영을 멈춘 휴식 시간이었다. 사극 영화를 찍고 있었는지 무겁고도 화려한 궁중 예복을 입은 여배우가 나무 밑에서 단정하게 자리하고 있었는데 당시 영화광(?)이었던 나는 그녀를 금방 알아 볼 수 있었다.

태○○ 양은(여배우는 무조건 ‘양’이라고 호칭했다) 톱스타는 아니었으나 조연급 배우로서는 비중이 있어서 주연으로도 간혹 출연을 할 때였다.

처음 그녀를 가까이서 본 순간 깜짝 놀랐다.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분장 때문이기도 했지만 뽀얀 피부에 그녀를 상징하는 점 하나까지도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그녀를 바라보면서 나는 2급 스타가 이렇게 예쁘니 톱스타인 김지미, 문희, 남정임 같은 배우들은 얼마나 예쁠 것인가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여배우를 바로 코앞에서 본 적이 없는 시골 아이들은 와! 하고 몰려갔다. 개중에는 사인을 해 달라고 덤비는 학생들도 있었고 그냥 가까이서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 아이들도 있었고 순식간에 북새통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그 배우도 놀라면서도 즐거운 기색이 역력했다.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이라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잠시 후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그녀가 갑자기 빽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한 것이다. 높은 옥타브의 앙칼진 목소리로 외쳤다.

“얘들 좀 쫓아내! 아유, 더러워! 아유, 먼지! 아유, 쉰 냄새!”

선머슴 같은 아이들에게서 무슨 향기가 날것인가? 난다면 땀 냄새, 먼지 냄새일 터이지. 아이들이 떼 지어 몰려더니 먼지도 일어나고 했을 것이다.

그 순간 건장한 청년들이 나타나 아이들의 뺨을 냅다 후려치고 몰아냈다. 시골 촌놈들은 어리둥절 어쩔 줄 몰라 했고 그리고 다 들 시무룩해졌다. 아이들도 그렇게 예쁜 입에서 그렇게 표독한 비명 소리가 나올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뺨을 맞아 볼이 부은 아이는 이렇게 멋지게 표현했다.

“볼따구니 아픈 것보다 지랄발광 하는 비명 소리에 귓구멍이 더 아프구먼!”

그 날 사람의 겉과 속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고 이 날 이때까지 그 여배우에 대해서 좋은 느낌이 없다.

그녀가 청순가련한 배역에 출연해서 눈물을 쥐어짜게 해도 슬프지 않았고 현모양처 역을 맡아 호연을 해도 호감이 가지 않았다. 그녀의 민낯을 바로 앞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 여배우의 이미지가 나쁘게 고착되었고 그녀가 나오는 영화는 보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굳이 그 여배우가 싫다는 말을 해 본적은 없다. 단지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만 보지 않으면 되고 우리의 삶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

이미지가 그 분야에서 성공하는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업종이 또 있다. 정치권이다.

대중의 표를 얻어야 살아남는 정치권에서 이미지는 중요한 득표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지만 추구하고 실력 없는 정치인은 신뢰 되지 않는다.

연예인은 스크린이나 TV의 가상의 공간에 존재하는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정치는 냉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사람들의 삶의 질, 때로는 생사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길거리에는 세월호 참사에도 아랑곳없이 유세 차량에서 퍼져 나오는 흥겨운 노래 소리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며칠 후에는 우리도 선택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이 시민들에게 봉사할 진짜배기 일꾼인지, 포장된 이미지만 잘 꾸며진 사람인지, 그냥 개인의 명예욕이나 출세욕에서 출마한 것이지 분별해 내야 한다. 시민들도 변별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정치란 유권자의 수준만큼, 꼭 그만큼 나아가는 것이니까.

예쁜 여배우의 겉모습에 반해 달려갔다가 뺨따귀나 냅다 얻어맞고 욕설만 한 바가지 듣고 온 어린 시절의 우리 수학여행단 꼴이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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