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TV 시절이다. TV에 출연해서 웃기는 연기를 하는 사람들을 요즈음은 개그맨이라 하지만 희극배우를 코미디언이라 불렀던 시절이었다.

막 TV가 대중성을 확장해 나갈 때라 희극배우들도 앞 다투어 TV에 출연해서 인기를 누렸다. 고등학생 장학퀴즈가 엄청난 인기를 끌 때였다. 당대 걸출한 코미디언들이 고등학생 교복을 엉성하게 입고 출연을 했던 코미디 프로였는데 그 내용은 대충 이렇다.

문제를 제시하는 사회자 앞에 퀴즈에 출전한 선수들이 줄지어 다소곳이 앉아 있다.

구봉서, 배삼룡, 임희춘, 곽규석 같은 이들이 선수들이다. 모든 선수들 앞에는 점수판과 벨이 놓여있고 그 점수판에는 100이란 숫자가 있다. 기본 점수 100점을 부여하고 퀴즈를 시작하는 것이다.

벨을 가장 빨리 누른 사람에게 먼저 답할 자격을 부여하고 문제를 맞히면 점수가 올라가고 틀리면 감점이 되는 퀴즈 게임 규칙으로 시작된다.

“1번 문제. 점수는 20점입니다. 김유신 장군이 근무했던 나라 이름은 무엇입니까?”

딩동, 배삼룡이 벨을 누른다.

“대한민국!”

“땡, 틀렸습니다.”

그 순간 배삼룡의 점수판에 감점이 되어 80점으로 표시된다.

“다음 문제는 배점이 30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섬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딩동, 배삼룡이 성급하게 벨을 누른다.

“네, 이번에는 틀림없어요. 여의도!”

“땡, 아이고, 또 틀렸습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문제들이 제시되고 선수들이 앞 다투어 벨을 누르고 모두 감점이 된다. 그 와중에도 그 프로그램의 주인공격인 구봉서는 언제나 자제를 한다. 그도 벨을 누르고 싶다. 벨을 누르러 가는 손을 다른 한 손으로 꽉 붙잡고 자제하는 모습이 희극적으로 묘사된다.

단 한 문제도 제대로 맞히는 선수가 없다. 결과는? 다른 선수들은 제각기 감점이 되어있다. 곽규석은 30점. 임희춘은 40점, 광분하여 설친 배삼룡은 빵점이다.

“배삼룡 학생은 더 이상 감점할 점수가 없게 되어서 실격입니다.”

바보 연기의 달인인 배삼룡은 그 순간 특유의 멍한 표정으로 망연자실한 연기를 구사한다.

반면에 각고의 인내 끝에 단 한 번도 벨을 누르지 않는데 성공한 구봉서는 환호작약,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구봉서는 100점으로 우승을 한다.

기본점수 100점이 백점만점으로 표현되는 절묘한 장면이다. 이 당시 ‘복지부동’하는 공직자들을 야유하는 것이기도 하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된다.’라는 세태를 풍자한 소극이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과정을 지켜보면 그냥 입 닫아 주는 것이 국민 정서에 도움이 되는 분들이 많다.

참사를 기회 삼아 종북 타령을 늘어놓는 국회의원님들, 유족들의 분노와 슬픔을 ‘시체 장사’라고 망언하는 극우 논객님, 장례비용을 보상금에서 공제하라는 나라살림에 알뜰한 총리님, 대통령 조화 잘 챙기라는 걱정도 팔자인 ‘황제라면’의 교육부 장관님, 추모집회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일당을 받았다는 유언비어를 날린 전 서울시장 후보님, 당신들 모모한 분들이 무엇인가 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접었다. 차라리 그냥 가만있어 주길 바란다.

유가족들만이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분노는 온 국민의 공분이다. 분노하지 않고 고통을 공감하지도 못한다면 ‘그냥 가만히 있어라!’ 상처에 더 이상 소금 뿌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장학퀴즈에 우승하는 70년대 흑백 TV 한 코미디가 문득 생각이 났다.

웃기는 이야기하는데 왜 울컥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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