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 작가의 사천삼천포愛 빠질 만한 이야기-25

▲ 추도로 향하는 어머님들의 느릿한 걸음.
시야를 가득 채우는 것은 눈이 시린 하늘입니다. 하늘 아래로 시선을 떨어뜨리면 그림처럼 소롯길이 이어집니다. 한 편의 영화 같은 풀샷입니다. 단정한 풀샷, 빙고~! 생각났습니다.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 1994)였습니다. 신수도(新樹島)를 거닐며 들었던 처음 감정이 그랬습니다.

일 포스티노는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1973)가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는 영화죠. 그러나 주인공은 제목처럼 우편배달부입니다. 이탈리아의 한적한 섬에 머물던 네루다에게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팬레터를 배달하던 사람이죠. 내용과 주제는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꼭 한 번 살펴보셨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따사로운 햇살과 새파란 하늘과 바다 그리고 그 가운데로 뻗은 길을 지나는 기분은 마치 내가 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온 기분이었습니다. 도심과 10분 거리에 불과한데 이렇게 다른 세상이 열리기도 하네요.

▲ 대구마을에서 만나는 몽돌해안.
도선장에서 오갔던 어르신들의 대화만큼이나 동네도 정겹습니다. 느릿느릿 흐르는 시간이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사천시의 개발계획대로라면 매일 수백 명이 다녀갈 명품 힐링 섬이 될 텐데, 그때도 이렇게 고요함이 살아 있으려나요.

신수도에는 차량운행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평일이라는 게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주말에 다녀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아도 하루에 자동차 두세 대 보면 많이 본다고 하네요. 사실 이 동네는 아직까지는 자동차 운행이 불편한 곳입니다. 대신 자전거도로는 잘 조성돼 있는데요, 그래서 나중에 배에서 내릴 때 자전거를 가지고 다시 오겠다고 다짐을 했네요.

앞서 일 포스티노의 이야기를 했는데요, 우편배달부는 절벽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도로를 달려 네루다의 집으로 향합니다. 뭉게구름이 뜬 하늘에 푸른 바다가 이어져 있고, 곁으로는 싱그러운 꽃무리가 심심치 않게 친구를 해줍니다. 신수도의 풍경이 딱 그렇습니다. 기암괴석을 내려다보며 자전거도로를 지나다보니,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곁에 두고도 몰랐구나 싶어서 미처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스스로에게 타박도 하게 됩니다.

조금 덥다 싶을 땐 바다에 바로 발을 적셔도 됩니다. 곳곳에 자리한 몽돌해안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여행객의 마음을 유혹하는데요, 한참 더울 때 파라솔을 펴고 누워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아니, 이번 여름에는 반드시 꼭 와야겠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아무생각 없이 쉬고 있다 보면 원기충전도 저절로 되겠죠.

인터넷에서 신수도를 검색해보면 조사님들의 블로그가 많이 검색되네요. 감성돔, 볼락 등 여러 곳에 조사님들을 유혹하는 낚시 포인트가 있어서인데, 요즘이 딱 제철이죠? 이럴 때마다 낚시를 배우지 못한 게 괜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는 입문을 해야 할 텐데…….

자전거 트레킹 코스를 따라 길을 걷던 중 순간적으로 어쩌지 싶어 갈피를 잡지 못한 순간이 있습니다. 거의 한 바퀴 다 돌고 마지막으로 보게 될 추도 근처에 다다랐을 때 즈음, 할머니 연배의 아주머니 이십여 명이 자전거 길을 따라 추도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바람을 막기 위한 섬 특유의 꼬불꼬불 샛길 사이에서 한 분 두 분씩 나와 모이기 시작합니다.

▲ 지승(地乘)〈奎 15423〉 경상도 사천현 (泗川縣) 오른쪽 끝에 신수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짐바구니를 겸한 유모차를 밀고 있습니다. 일평생 바다를 논밭삼아 살아오셨을 것이며 아마도 그 터전으로 향하는 길이었겠죠. 조금 다리가 부실하긴 해도 아직은 젊은 편이라 빨리 걷자면 할머니들을 휙휙 지나칠 수도 있을 터인데, 어쩐지 그분들의 천천한 걸음을 마구 지나쳐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조용히 흐르는 시간에 훼방이라도 놓는 기분이랄까요? 덕분에 끝내 추도로 향하진 못하고 먼발치에서 배웅만 했습니다. 안녕히 다녀오시라고 말이죠.

사천시의 계획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대구마을의 몽돌해수욕장을 정비하고, 추도 쪽에는 캠핑장을 조성한다고 하는데요, 이런저런 이유로 끝내 가보진 못했지만 저런 천혜의 비경 사이에 숨은 곳이라면 가보지 않아도 정말 멋질 것만 같습니다.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 우편배달부는 네루다에게 편지를 배달하면서 시(詩)를 알게 되었고, 시 덕분에 스스로의 삶을 관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우편배달부에게 자양분이 됐던 시처럼 바쁜 현대인에게 전환점이 되는 것은 어떤 게 있을까요. 아마도 숨 가쁘게 다투며 살아온 이들에게는 정적의 순간, 고요의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무 그늘에 기대어 쉰다는 글자 휴(休), 신수도(新樹島)에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 개발이 완료되면 관문이 될 신수도 문화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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