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나, 그리고 베니스

베로나를 스치며

베로나는 영국의 대 문호 셰익스피어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다. 줄리엣의 집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그곳을 찾아, 그들의 못다 이룬 사랑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동시에 현재 자신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과연 집 앞과 골목은 발 딛을 틈이 없을 만큼 혼잡했고 멀리서 바라보는 난간은 로미오가 세레나데를 부르고 줄리엣이 화답할 만큼 낭만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벽면에 엄청나게 그려진 낙서들을 보면서 사랑의 공식은 과거나 현재 그리고 장소에 무관함을 본다.

 

▲ 베로나에 있는 아레나(경기장)

▲ 베로나 시청사

비 오는 베로나의 아레나는 로마의 콜로세움과 같은 역할, 즉 검투장 이었는데 지금은 몹시 퇴락하여 보수작업이 한창이었다. 불현듯 우리 문화재의 유지와 보수가 생각났는데 석조건물은 이렇듯 이천년을 넘겨 유지하는데 우리의 목조 건물은 천년을 넘기기 어려우니 우리 역사가 아무리 오천년이라 해도 남아 있는 것이 없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그나마 남아 있어야 할 정신문화조차도 이제는 희미해지는 현실 아닌가!

 

베니스(베네치아)

베네치아의 역사는, 567년 이민족에 쫓긴 롬바르디아의 피난민이 베네치아만(灣) 기슭에 마을을 만든 데서 시작된다. 6세기 말에는 12개의 섬에 취락이 형성되어 리알토 섬이 그 중심이 되고, 이후 리알토 섬이 베네치아 번영의 심장부 구실을 하였다. 처음 비잔틴의 지배를 받으면서 급속히 해상무역의 본거지로 성장하여 7세기 말에는 무역의 중심지로 알려졌고, 도시공화제(都市共和制) 아래 독립적 특권을 행사하였다.  

베네치아만(灣) 안쪽의 산호초 위에 흩어져 있는 118개의 섬들이 약 400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다. 섬과 섬 사이의 수로가 중요한 교통로가 되어 독특한 시가지를 이루며, 흔히 ‘물의 도시’라고 부른다. 육지와는 철교·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나, 철도역은 철교가 와 닿는 섬 어귀에 있고, 다리를 왕래하는 자동차는 섬 어귀에 차를 반드시 주차하여야 한다. 시내에는 차가 들어올 수 없다. 시가지는 본래 석호와 사주(모래로 이루어진 제방)를 연결한 것이기 때문에 지반이 약하여 오염과 지반침하로 인해 내부 수로의 배 속도가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다.

베니스는 역시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으로 유명한데 그 배경에는 금융자본에 대한 당시의 냉소적 시각이 깔려있다. 실제로 베니스는 이러한 무역업으로 생긴 자본을 다시 금융업으로 이동시켜 성장하였고 희곡에 나오는 것처럼 샤일록은 유대인이었는데 실제 베니스의 금융업은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오늘날 이들 유대인들의 집단 거주 지역을 ‘게토’라고 부르는데 게토는 이탈리아 말 '게타(gheta)', 즉 대포 주물공장을 뜻하는데, 유대인 밀집지역이 그 근처에 있어서 붙인 유대인 게타라는 말에서 생겨났다는 설이 유력하다. 1516년 4월 이탈리아는 기독교도들로부터 유대교도들을 격리시키기 위해 베네치아에 유대인 게토를 설치하였는데, 이후 유럽 다른 국가들도 유대인 거주 지역을 '게토'라고 부르게 되면서 일반화되었다. 이 사실의 배후에는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유럽전체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사실의 반증이자 동시에 그들의 영향력이 막강하였다는 사실도 동시에 말해준다.

▲ 산 마르코 광장

베니스의 중심 산마르코 광장은 인산인해였다. 산마르코 광장은 베네치아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열주로 가득한 건물이 광장을 'ㄷ'자로 둘러싸고 있어 광장은 하나의 거대한 홀처럼 보이며, 나폴레옹은 이를 두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홀)이라 불렀다. 광장의 가운데에는 베네치아의 수호신인 날개 달린 사자상과 성테오도르상이 있고 동쪽으로 산마르코 대성당, 두칼레 궁전이 있다. 광장을 둘러싼 건물은 16세기 경 정부청사로 건립된 것으로 나폴레옹의 날개(알라 나폴레오니카)라고도 불리며, 현재는 박물관을 비롯해 오래된 카페, 살롱들이 들어서 있다.

 

▲ 종탑에서 내랴다 본 산 마르코 성당 지붕

마르코 대성당의 종탑에 올라보니 거의 100m(정확히 98.6m) 높이에서 보는 베니스는 유럽의 특이한 지붕색(붉은 벽돌색)으로 가득한 중세의 모습 그대로였다. 여기서 갈릴레오가 천체를 관측했다는 표식이 있었는데 이 나라의 과학적 탐구정신은 높이 살만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 탄식의 다리

사형수 혹은 무기수가 재판을 받고 형무소로 가는 길에 놓여 있었던 다리를 ‘탄식의 다리’라 불렀는데 죄수들이 작은 창으로 보는 베니스의 바다와 광장의 마지막 풍경은 아마도 지극히 아름다웠을 것이다.

 

▲ 곤도라가 있는 베니스

클로드 모네의 유명한 그림 ‘베니스의 곤돌라’를 보면 기둥에 묶여진 곤돌라가 바다에 고적하게 묶여 있는 풍경을 모네만의 독특한 빛으로 묘사한 작품으로서 곤돌라에 대한 당시의 감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실제 11세기 베니스가 번영할 당시부터 낭만적 교통수단이던 이 곤돌라는 선두와 선미가 모두 휘어져 있는 선체와 그 위에 서서 긴 노를 젓는 사공의 모습이 너무나 낭만적인 배다. 5-6인이 탈 수 있는 이 배는 이제 베니스 관광의 꽃으로 불리는데 베니스 곳곳의 좁은 수로를 옮겨 다니며 몇 백 년 된 집들과 그 속에 사는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예술적인 교통수단이다. 본래 뱃사공이 이탈리아 가곡을 부르며 노를 저었다 하는데 우리 일행 중 음악 선생님 두 분께서 노래를 불러 뱃사공이 부르는 노래와는 비교되지 않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김 선생의 오솔길>은 현현적적 시민기자가 클래식 평론, 영화 평론, 책 평론 등으로 세상읽기를 하는 공간입니다. 현현적적은 곤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김준식 교사의 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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