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선생의 오솔길]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리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소년과 호랑이가 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넌다는 이야기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제한 공간 혹은 폐쇄 공간에서 겪는 인간들의 본성과 그 심리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 사용된다. 그러한 상황을 바다라는 공간으로 옮긴 얀 마텔의 소설 원작을 이안 감독의 시선으로 연출한 “라이프 오브 파이”는 삶의 공간에 대한 은유와 상징의 이야기다. 바다위에서 한 소년이 겪는 생존의 투쟁을 환상적인 영상과 해학적 요소로 잘 버무려, 관객에게 생존투쟁의 비참함이나 고단함 보다는 자신이 점유하고 있는 삶의 공간에 대한 자각과, 그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타자와의 관계를 성찰하게 한다.

 

주인공 파이

주인공 파이의 독특한 이름에 대한 연혁으로 시작하는 영화적 수사는 이 영화가 파이(수라즈 샤르마 분)의 개인적 삶에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좀 더 자세히 보면 파이의 삶에 투영되는 인도인의 삶에 대한 서양인들의 생각이 녹아있고 이것을 감독은 다양한 장치로 아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물론 감독이 동양인이므로 그 느낌이 좀 더 달랐을지 모른다. 영화 전반부 파이의 삶은 다양한 종교가 그 주제인데 그 이면에는 파이의 끝없는 호기심이 있었다. 이 호기심은 파이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단서이자 이 영화의 에너지로 작용한다.

 

특히 종교에 대한 파이의 태도는 매우 특이하고 재미있는데 아마도 인도라는 문화 환경이 주는 다양성과 포용성이 그 배경이 되었을 것이고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파이라는 소년의 개인적 취향으로도 해석될 수도 있다. 힌두교를 시작으로 카톨릭, 불교, 이슬람에 모두 감동하는 파이의 태도는 그 뒤 닥쳐올 엄청난 불행에서 그가 보여주는 의연함과 순응적 태도에 대한 사전 포석이 될 수 있다.

 

타인과의 관계를 좁게 해석하면 나의 공간과 겹쳐있는 교집합 정도로 이해되지만 넓게 해석하면 나의 공간과 타인의 공간은 둘이 아니라 결국 하나의 집합이며 나라는 존재 인식은 결국 타자와의 경계를 긋는 것이요, 이것으로부터 공간에의 독점 욕구가 생기게 된다. 영화 속 작은 보트 위의 공간을 벵골 호랑이와 주인공 파이의 공간으로 구분 지우기 위해 영화 속 주인공보다 관객인 내가 몹시 바라고 있었음을 영화가 중반부를 넘길 때쯤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내 머릿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공간에의 독점욕이 작용한 결과였다.

 

리처드 파커

벵골 호랑이의 본래 이름은 “목마름”이었다. 하지만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으로 바뀌는데 이 과정에 대한 설명은 아주 짧은 설명이지만 그 속에는 인도인들이 가진 삶에 대한 자세와 태도가 모두 녹아들어 있다. 이를테면 이름이 바꾸어 부르게 된 것에 대해 숙명처럼 아니면 변화조차도 하나의 과정처럼 여기는 인도인들의 태도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어쨌거나 리처드 파커는 폭풍우 속에서도 죽지 않고 구명보트를 타게 되고 주인공 파이와 긴 여정을 시작한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나와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은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고양잇과 동물 중 가장 크고 사나운 호랑이가 인간과 좁은 보트를 타고 끝없는 바다 위를 표류한다는 가정은 사실이든 상상이든 모두 흥미롭다. 바다 위의 보트는 생명을 유지하는 피난처요 유일한 쉼터인데 그 보트위에 호랑이의 존재는 그곳을 가장 위험한 장소로 만들고 만다. 마치 생존의 처절한 투쟁이 있는 세상처럼 보트위의 나날은 긴장의 연속이다. 리처드 파커의 영화적 의미는 주인공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로 시작하여 마침내 유일한 동료로 발전하며 마침내 교감하는 관계로 발전하지만 끝내 뒤돌아보지 않는 “비인간적 존재”로 그려진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영화의 원작에 스며있는 사물에 대한 서양적 사고의 단면, 예를 들어 인간과 동물의 명확한 구분을 보게 된다.

 

장치들

“삶이란 그런 거죠. 무엇인가 끊임없이 흘려보내는 것.” 파이의 대사 중 일부분이다. 아마 이 소설과 영화의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는 생각을 파이의 입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 돌아온 세상에서 파이가 느낀 것은 바로 이 말처럼 그 모든 것이 과거의 일이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과거의 사실에 묶이지 말고 현재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환상의 섬, 즉 파이 일행이 표류 중 도착한 생명의 섬이자 동시에 죽음의 섬의 존재는 언제나 우리가 겪어내고 있는 우리의 일상과 같다. 어떤 때는 환상의 섬처럼 우리에게 모든 것을 제공하는 공간이었다가도 어떤 때는 우리를 죽음처럼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몰아넣는 일상의 이중성에 대한 상징이 파이가 도착했던 그 섬인지도 모른다.

 

영화 끝 부분, 파이는 배의 침몰과 표류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이 믿지 않자 이야기를 꾸며 내는데, 배가 침몰할 당시 구명보트에 탔던 동물들과 배 안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치환하여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이에나는 배의 주방장으로, 어머니는 오랑우탄으로, 얼룩말은 불교신자였던 선원으로, 호랑이는 자신으로 바꿔 이야기한다. 은유와 상징의 의미를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 또는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각각 되묻고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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