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선생의 오솔길>6. 베토벤 교향곡 제4번 B플랫장조 Op.60

▲ 카라얀이 지휘한 음반을 가장 명반으로 생각한다. 카라얀이 거장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카라얀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슈만이 아니더라도 베토벤 4번 교향곡의 처음 느낌은 여성적이다. 5번 운명 교향곡의 장중함이나 3번 영웅 교향곡의 웅혼함, 6번 전원 교향곡의 아름다움, 9번 합창 교향곡의 위대함 같은 일관된 주제의식은 없다. 따라서 4번 교향곡에는 적절한 부제를 붙이기가 어렵다(아마 그래서 긴 세월 동안 부제 없는 교향곡으로 남겨 두었을 것이다).

일상의 삶에서 특별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기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다. 문제의식이란 나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각종의 생각이나 관념을 하나의 줄기로 묶어내는 중간과정을 가진다는 뜻인데 이는 마치 쇠를 녹이는 용광로처럼 단 한순간도 뜨거움을 잃지 말아야하는 열정을 소유해야만 하는 일이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베토벤의 음악적 접근과 그 결과물들은 그가 단 한순간도 문제의식을 잃지 않았다는 분명한 증거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3번 교향곡 (1804년 완성)은 외부적 문제, 즉 다른 이의 삶에 대한 묘사와 그것으로부터 빚어지는 상황에 대한 묘사였다면 4번 교향곡(1806년)에서는 베토벤은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그 내면의 소리를 음악적 방법으로 표현해 낸 것으로 보여 진다.

1. 1악장 Adagio – Allegro Vivace

고요한 현악기로 시작되는 처음을 지나면 내면의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는 것처럼 주고받는 론도형식을 보이다가 이내 장중한 저음으로 휘감는 비감하고 낮은 베토벤적 감흥을 보여준다. 삶은 언제나 나와 나를 상대한 것과의 불화인 것처럼 음악은 불협화음으로 그리고 단속적 스타카토로 감각과 감정이 이어진다. 고요해지다가 이내 춤곡인양 비바체로 빨라진다. 알 수 없는 마음이여!

18세기 말 유럽의 분위기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 고전의 춤곡이 한 동안 이어진다. 하지만 곳곳에 낭만의 시작일지도 모를 작고 가는 관악기들이 지휘자의 지휘봉 끝에서 살랑댄다. 이어지는 유니즌은 주제의식이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다짐인지도 모를 무거움과 결의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한편, 삶의 주변부에는 언제나 자질구레한 것들이 들썩이는 법. 가벼운 감흥들과 가끔씩 나타나는 감정의 기복들이 론도형식으로 또는 주제의 변주로 이어진다. 결코 분명해질 수 없는 삶의 장면들처럼 음악은 악보 위를 넘실댄다. 후반부에 들어서면 부정도 긍정도 아닌 유려한 저음의 현악들이 평온을 가장한 음모처럼 디미누엔도로 끝을 맺는다.

2. 2악장 Adagio

유려하고 아름다운 시작, 배경으로 들리는 “빠방~빠방”의 반복은 평화롭지만 일상에 매몰된 분위기를 암시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들리는 다양한 변주들에서 들리는 정형화된 박자가 고전의 산물이라면 다양한 리듬과 불협화음까지를 포함한 하모니는 다가올 19세기 중반에 화려하게 꽃 피울 낭만을 느끼게 한다. 한편으로 같은 해 작곡되었던 베토벤 현악 4중주 제9번 C장조 라주모프스키의 분위기를 슬쩍 느낀다. 삶의 느낌은 가늘고 길다. 30대 초반의 베토벤이 느꼈던 삶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유럽 전역을 뒤흔드는 프랑스 혁명의 분위기와 메테르니히를 위시한 반동의 분위기가 혼재한 그 시절, 젊은 마에스트로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좌절과 희망을 동시에 보았을 것이다. 돌연 긴장을 느끼게 하는 타악기의 불안한 두드림과 잘 정돈된 현악기의 협주가 연이어 등장하는 것으로 그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이 들린다. 가끔 들리는 팀파니 주자의 존재감과 여전히 반복되는 “빠방~빠방”.

어둠과 밝음의 경계위에 위치하고 있어 불분명한 내면의 모습을 분명하게 해 보려는 베토벤의 노력은 주제의 반복으로 계속되다가 얼마가지 않아 불현듯 나타나는 회의감으로 다시 희미해진다. Adagio로만 표현될 수 없는 삶의 목표들이 Allegro같이 빠르게 유니즌으로 악장을 마무리한다.

3. 3악장 Allegro Vivace

3악장의 처음은 5번, 6번 교향곡에서 보이는 내면의 절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게 한다. 사실 5번 교향곡 2악장과 6번 교향곡 1악장의 넘실대는 운명의 일렁임과 자연의 숭고한 음성이 어느 날 갑자기 다다른 경지는 아니었을 터, 4번 교향곡 3악장은 그러한 작업의 시작처럼 느껴진다. 피아노시모와 크레셴도를 적절히 배합한 첫 부분을 지나 이제는 삶의 회의와 주변부의 잡음을 극복하기라도 한 듯이 강렬한 유니즌을 토해낸다. 로맹 롤랑이 ‘걸작의 숲’이라고 부른 이 시기의 작품들에서 느끼는 것처럼 이제는 베토벤의 분명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숲속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같은 부드러운 목관악기와 숲속을 휘휘 돌아 내려온 맑은 개울 같은 현악기와 관악기의 묘사는 이제 베토벤적 표현이라 부를만하다. 1악장과 2악장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이 분명하고 확실한 기분은 이제 그가 발견한 음악적 세계에 대한 자신감같이 느껴진다. 아무리 반복되어도 좋을 것 같은 3악장의 주제는 자연이라는 위대함이 주는 영감을 베토벤이 겸허히 수용하고 있음과 그로부터 창조해내는 새로운 음악적 세계의 시작을 느끼게 한다.

4. 4악장 Allegro ma non troppo

3악장을 기점으로 삶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진 베토벤의 생각은 처음부터 춤곡처럼 경쾌하다. 그를 아프게 했던 사랑도, 몸의 이상도 이제는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음악으로 감지된다. 앞 악장의 론도는 삶의 바닥을 표현했다면 이제는 흥겨운 리듬으로 자신과 대화를 주고받는 느낌이 지배적이다. 어쩌면 정도를 넘을 정도로 과하다. 그래서인지 Allegro ma non troppo(빠르지만 너무 과하지 않게)로 제한한다. 그러나 감정이 어디 쉽게 통제될 수 있는 것인가? 마음 깊숙한 곳에서 퍼져 나오는 기쁨과 열정은 쉽게 통제되지 않는다. 스스로 그 마음을 통제하려고 노력해보려는 듯 마지막 한 소절은 고요해지기는 한다. 그러나 마지막은 희망으로 빛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 희망은 막연함에서 오는 희망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서러움과 고통을 이겨낸 단단한 희망임에 분명해 보인다. 

<김 선생의 오솔길>은 현현적적 시민기자가 클래식 평론, 영화 평론, 책 평론 등으로 세상읽기를 하는 공간입니다. 현현적적은 곤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김준식 교사의 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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