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KAI 산악동호회 '소리개', 올해도 연탄배달에 구슬땀

▲ 소리개 회원들이 연탄 하나 하나 정성스레 전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산행하기 좋은 맑고 청명한 가을날씹니다. 근데 이렇게 좋은 주말에 보통 산악회와는 달리 조금 다른 ‘땀방울’을 흘린다는 산악동호회가 있어 찾아갔습니다.

8일 오전 9시, 사천읍에 소재한 (주)한국한공우주산업(=KAI) 제2공장에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듭니다. 이들이 바로 KAI 내 산악동호회인 ‘소리개’ 회원들입니다. 소리개는 '솔개'와 같은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등산복 차림이 아닌, 일하는 차림새의 옷들로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네요? 산악회 회원들 치곤 이상한(?) 복장입니다.

이날 모인 인원은 8살 꼬마부터 40대 주부까지 총 49명, 소리개 총무 하재철 씨는 “이전과 비교해 가족단위 참여가 늘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재밌는 일로 가족까지 데리고 나온 걸까요? 회원 한 분에게 물어보니, 오늘이 올해로 세 번째 맞는 ‘불우이웃 연탄배달’을 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참가자들이 다 모이자, 소리개 총무인 하재철 씨가 회원들에게 오늘 진행될 일과 장소를 알려주고 팀을 나눠줍니다. 연탄배달은 두 팀으로 나눠 A팀이 선구동 내 2가구, B팀이 궁지동 내 4가구를 맡기로 했습니다. 이날 배달하기로 한 연탄은 한 가구당 500장으로 총 6가구 3000장입니다. 적지 않은 ‘따뜻함’입니다.

버스가 선구동에 도착하자, B팀 회원들이 버스에서 내리고 작업을 준비합니다. 연탄을 나르기 전 비옷을 입는 것은 필수! 회원들은 능숙하게 비옷을 꺼내 돌려 입습니다. 그리곤 준비된 수레에 연탄을 차곡차곡 쌓습니다. 이어 수레에 가득 담긴 연탄들은 좁은 골목길을 따라 홀로 사시는 김옥순 할머니집 앞에 멈춰섭니다.
 

▲ 좁은 골목길에서 회원들이 두 줄로 서서 연탄을 하나씩 넘겨줍니다.
▲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구슬땀을 흘리며, 연탄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회원들은 좁은 골목길 사이 두 줄로 서서 연탄을 한 장 한 장 이어받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회원들의 이마는 땀방울로 가득하네요. 그런데 같이 참가한 아이들은 힘들지도 않나 봅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연탄가루와 함께 장난기가 가득 합니다.

한편, 집 주인 김옥순 할머니는 고맙고도 미안한지 회원들의 주위를 서성이십니다. 할머니는 “회원들의 도움으로 올해 겨울은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됐다”며, 쉬는 시간을 틈타  음료수를 회원들에게 나눠줍니다.

▲ 소리개의 정성 덕분에 김옥순 할머니는 "올 겨울 연탄 걱정은 덜었다"고 말했습니다.

연탄배달에 유난히 '열심'인 한 학생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좀 힘들긴 해도 정말 뿌듯해요”라며 미소를 짓습니다. 이 학생(홍창기, 진주금성초 5학년)은 아버지를 따라 이번 행사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학생의 아버지는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네요.

진주에서 청소년 상담 일을 한다는 배자현 씨도 “남편을 따라 아들과 참가했는데, 재미도 있고 보람도 느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 이번 연탄배달이 "힘들긴 하지만 뿌듯하다"라는 홍창기 군 모습

이어 궁지동에서는 또 다른 배달 팀을 만났습니다. 궁지동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황금색 가을 들녘 사이에 검게 그을린 회원들의 모습입니다. A팀은 벌써 한 집을 끝내고 두 번째 가정에 배달 중이네요. 첫 번째 연탄 배달이 완료된 집에서 이두녀 할머니를 만나보았습니다.

▲ 진입로가 좁아 A팀 회원들이 손수 연탄을 나르고 있는 모습입니다.
▲ 연탄은 한 가구당 500장으로 겨울나기에는 충분한 양입니다.

이두녀 할머니는 먼저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이번 겨울에 연탄 살 돈이 없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소리개 회원들이 연탄을 배달해 줘 너무나도 고맙다. 참가한 아이들에게 용돈이라도 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

이렇게 말하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습니다. 소리개 회원들의 따뜻한 손길은 이렇듯 여러 이웃에게 감동을 주고 있었습니다.

▲ 이두녀 할머니는 소리개 회원들의 고마움에 연신 눈을 붉혔습니다.
▲ 이두녀 할머니집에 배달된 연탄. 가득 쌓인 연탄 덕에 할머니의 겨울 걱정은 사라졌습니다.

연탄 배달을 하고 있는 이들에서 앳되어 보이는 학생들이 있어 만나보았습니다. 사천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구민수, 이병주, 윤병진, 서충호, 장윤진 학생은 “우리가 흘린 땀방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쁘다”며 “앞으로도 다른 봉사활동에도 참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소리개 회원의 아들, 그리고 그 친구들 다운 모습입니다.

▲ 좁은 골목길 학생들이 손수 연탄을 나르고 있습니다.
▲ 사천고등학교 1학년 구민수, 이병주, 윤병진, 서충호, 장윤진 학생

회원들이 열심히 땀을 흘리며 연탄을 배달하는 사이, 회원들에게 줄 배를 깎고 있는 박삼순 할머니는 “하루에 보통 연탄을 2~3개 쓰는데, 500장이면 이번 겨울은 충분하다”며 “회원들의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 박삼순 할머니가 연탄을 나르고 있는 회원들을 위해 배를 깎고 있습니다.

어느새 연탄배달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원들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없습니다. 그만큼 보람이 크기 때문일까요?

이번 봉사가 세 번째라는 소리개 회원 황보동환 씨는 “연탄배달을 할 때마다 보람을 느낍니다. 산행할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소리개 회원 임지훈 씨도 “8살 난 딸과 땀을 흘렸는데,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네요.

▲ 딸 임유예양이 연탄을 들고 가는 모습을 임지훈씨가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얼굴이 까맣게 된 구선복 소리개산악회 회장님은 “연탄배달은 비단 소리개 회원들 뿐만 아니라, 회사 내 직원들의 후원, 참여 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어려운 이웃들이 몸까지 추워져서야 되겠냐”고 말하시네요.

▲ 봉사활동이 막바지에 다르자 회원들의 얼굴은 연탄(?)이 됐습니다.

이날 연탄배달에는 사천네트워크와 사천자활센터 관계자도 함께했습니다. 이들은 연탄이 꼭 필요한 가정을 소개했습니다. 사천네트워크 이주화 팀장은 “드러나진 않아도 도움이 필요한 숨은 이웃이 많아요”라며, 누구나 좋은 일을 하고 싶고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다면 언제든 연락을 달라고 귀뜸합니다.

▲ 6가구에 연탄 3000장을 전달한 소리개 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연탄배달이 끝나자 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사진을 찍습니다. 시작할 때에 비하면 저마다 얼굴이 붉게 변했습니다. 가을 햇빛에 그을린 탓입니다. 어쩌면 그 어떤 가을단풍보다 아름다운 단풍입니다.

문득 시 한 편이 떠오릅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입니다.

이 시를 이렇게 바꿔보고 싶네요.

"연탄 한 장 500원이라고 무시하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연탄 한 번 전해준 사람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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