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병주가 만난 사람>“정년을 공무원처럼” 외치던 정순세 씨, “후배들만이라도..”

정년퇴임을 맞는 환경미화원 정순세 씨.
6월29일 오후2시, 사천시 환경미화원들의 쉼터로 쓰이는 사천시환경복지회관(옛 동림동사무소)에 환경미화원들이 모였다. 평소 같으면 저마다 맡은 곳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시간에 이들이 모인 것은, 긴 시간 함께 동고동락한 동료 미화원의 퇴임식에 참석하기 위함이다.

정만규 사천시장의 축사 속에 퇴임식은 금방 끝났다. 기념촬영이 이어지고 나니 간단한 음식이 차려졌다. 술잔을 건네기에는 퍽 이른 시간. 하지만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 십 년을 함께 땀 흘린 사이에 이별을 앞뒀으니, 그리 어색해보이지는 않았다.

이날 퇴임식의 주인공은 정순세 씨와 정기채 씨. 두 사람 모두 53년생이다. 이 가운데 정기채 씨는 지난 6월13일 근무 중 갑자기 쓰러져 참석치 못했다. 심근경색에 의한 뇌졸중이란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이날 퇴임식에는 그의 형이 대신 참석했다.

사실 이날 퇴임식이 있기 전까지, 두 사람은 사천시를 향해 서운한 감정을 여러 번 드러냈었다. 자신들의 정년이 ‘만58세’로 규정된 것이 억울하다는 얘기였다.

정만규 사천시장이 퇴직자 가족들과 함께 기념촬영 중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일까. 잠시 그들의 억울함을 살펴보자.

지방직 공무원들의 정년에 두 가지 잣대가 있다는 것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5급 사무관급 이상이면 정년이 60세요, 그 아래면 57세였다. 이런 이중 잣대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지난 2009년부터 이를 바로잡는 중이다. 즉 2009년부터 2010년까지는 58세로, 2011년부터 2012년까지는 59세로, 그리고 2013년부터는 사무관급이상처럼 60세로 같아진다.

그런데 이런 계획이 검토될 당시 “무기계약직원(줄여 무기직)들의 정년도 공무원들과 같이 맞춰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이에 경상남도는 무기직들의 정년을 하위직 공무원들의 정년 연장 계획에 따르도록 하는 지침을 만들었고, 도청뿐 아니라 일선 시군에서도 보조를 맞춰주길 기대했다.

이 지침대로라면 올해를 기준으로 공무원 하위직이나 무기직의 정년은 만59세다.

그러나 사천시는 상황이 다르다. 무기직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57세가 정년이다. 환경미화원만 58세로 형편이 조금 낫다. 그것도 2009년, 정부와 지자체의 실수로 발생한 체불임금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화원들의 정년연장 요구를 시가 받아들인 결과다.

정년연장은 여기서 끝. 공무원들처럼 해가 갈수록 정년이 늘어날 것이란 환경미화원들의 기대는 무너졌다.

간단한 기념식 뒤 축하음식을 나누는 환경미화원들.
이에 대한 사천시의 해명은 여러 가지다. 먼저 다른 지자체와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2009년 당시 경남도가 “무기직의 정년도 공무원과 같이 맞춘다”라고 발표했을 때 이를 준용한 기초지자체는 4개에 불과했다. 무기직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최근에서야 이를 따르는 지자체가 조금씩 느는 정도다. 결국 사천시는 다른 지자체의 눈치를 보며 무기직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일에 눈을 감은 셈이다.

사천시가 환경미화원들의 정년을 늘려주지 못한다며 든 또 다른 이유는 ‘공무원들의 임금총액’ 문제다. 사천시 소속 모든 근로자의 임금으로 쓸 수 있는 돈이 한정돼 있는데, 이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란 얘기다.

그러나 지난 6월 행정사무감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지난해 쓸 수 있는 임금총액 가운데 11억 원 이상이 남았음이다. 또 어차피 2명의 미화원이 퇴직하면 다시 2명을 신규로 뽑아야 한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임금총액 때문에 정년을 늘려주기 힘들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끝으로 ‘다른 무기직들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가 있다. 어쩌면 사천시가 가장 하고픈 이야기일 수 있겠다. 사천시에는 환경미화원 말고도 도로보수원과 행정보조원 등 다른 무기직들이 있는데, 이들의 정년은 57세라는 것이다. 따라서 환경미화원들의 정년만 늘려주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환경미화원들의 청소장비.
다소 설득력 있게 들린다. 하지만 올해 초 무기계약직노조가 만들어져 사천시와 단체협상을 벌이고 있고, 이 협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안건이 무기직의 정년연장 문제다. 흘러나오는 얘기로는 사천시나 노조 모두 이 안건이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

이쯤 되면 6월말로 퇴직하는 두 환경미화원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까?

정순세 씨와 정기채 씨는 올해 초부터 사천시를 향해 “정년을 59세로 늘려 달라”고 요구해왔다. 이 문제로 정만규 사천시장 면담을 두 차례 시도했으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단다. 환경미화원노사협의회를 통해서도 주장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평소에는 늘 ‘당신들도 공무원이다. 그러니 매사에 모범을 보이고, 자부심도 가져야 한다’고 해놓고선, 정년을 공무원과 같게 해달라는 우리 주장은 묵살해버렸다. 너무 섭섭하다.”

정순세 씨가 동료들과 마지막 악수를 나누고 있다.
그동안 시를 향해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던 정 씨. 그러나 퇴임식을 갖는 이날만큼은 속상함을 훌훌 털었다.

“나도 사람인데 어찌 욕심이 없겠나. 단 1년이라도 더 일하고 싶은 욕심. 하지만 이제는 욕심을 버렸다. 욕심을 버리니 섭섭한 마음도 가셨다. 다만 후배들만이라도 당초 약속한대로 공무원들의 정년과 같아지길 바란다.”

정 씨는 이날, 한 때 낯을 붉혀야 했던 공무원들과 손을 맞잡으며 마음을 풀었다. 그리고 동료들의 손도 맞잡으며 “건강히 일하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그 역시 “움직일 수 있는 한 일하겠다”며 인생 제2막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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