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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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권형기 교보생명 FP
  • 승인 2008.12.16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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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욕망의 배후에는 결핍이 있습니다. 완벽하고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욕망은 수많은 얼굴로 우리의 내면에 존재합니다.

때로 욕망이라는 이름이 불온하게 느껴지는 것은 금욕을 미덕처럼 배우며 사회화 되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은 많은 부분에 있어 더 나은 삶을 위한 원동력으로 작동해 왔습니다.

종종 욕망의 무게에 삶이 온전하지 못하고 짓눌려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결과가 너무도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불나비처럼 멈추지 못합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영화 포스터와 장면
프로이트는 <쾌락원리를 넘어서>에서 죽음만이 욕망을 충족시킬 뿐이라며 결핍과 욕망의 구조는 깨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달리 말하면 욕망을 다스리는 과정이 인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비비안 리의 블랑쉬역이 압권이었던, 이미 고전이 된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배경이 된 도시는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뉴올리언스입니다. 욕망의 크기가 결핍의 그것과 비례한다면 화려하고 가식적이며 문란하기 까지 한 블랑쉬의 모습은 결핍의 수렁에서 허우적대는 절규쯤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파멸은 불가피해보입니다.

18세기 초 수많은 프랑스인들을 부자로 만들어주고 심지어 프랑스 정부의 재정적자까지 해결해준 존 로(John Law)가 그의 사기행각의 배경으로 삼은 도시 또한 공교롭게도 루이지애나입니다.

그는 통화가 없어 상품을 구매 할 수 없고, 생산의 동기를 잃자 일자리가 사라지고, 침체의 악순환을 겪고 있는 당시 유럽 여러 나라의 상황과 달리 절대호황을 누렸던 네덜란드에서 착안하여 유럽최초의 불환지폐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암스테르담 은행에서 금으로 태환을 보증하는 증서인 지폐를 최초로 발행하여 충분한 유동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방탕함으로 모두 탕진하고, 심지어 결투에서 상대방을 살해한 혐의로 수배를 받고 있던 그가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어느 곳에 묻혀 있을지도 모르는(?) 금으로 바꿔 줄 수도 있는(?) 증서, 명목상의 태환 지폐를 프랑스에서 발행하자 당시 프랑스는 큰 호황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프랑스인들을 마치 백만장자의 부자가 된 것처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호황의 끝은 비참했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증서가 발행되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 사람들이 그 루이지애나에 묻혀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금으로 증서를 교환해줄 것을 요구하기 시작하자 사기행각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존 로는 달아났고 부자의 증표였던 증서들은 한순간에 의미 없는 휴지조각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화통을 울리며 폭풍처럼 질주하던 기차에 욕망이라는 승차권을 부적처럼 간직했던 승객들은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궁극의 달성은 커녕 파멸이라는 정거장에 도달하고 만 것입니다.

자본주의 모순의 중심엔 화폐가 있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스스로 자가증식을 가능케 한 화폐의 이자제도에 있습니다. 따라서 통화량과 금리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은 적어도 자본주의 제도 하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과도 같은 것입니다.

지난 몇 년간 화려했던 세계경제의 호황에도 통화량과 금리의 메커니즘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은행은 그들이 집행할 수 있는 권한 안에서 대출을 늘려 집을 사게 했고 세계적인 저금리 추세에 좀 더 높은 이율을 바랬던 사람들은 주식 투자의 대열에 속속 합류했습니다.

그러나 호황을 구가하며 월가의 사기꾼들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기차로 친절하게 세계를 안내할 때 그 종착지가 적어도 오늘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비싼 대가를 치르고 지금 우리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2009년의 비관적인 전망이 잇따르고 있지만 많은 투자전문가들은 이 흉흉한 와중에서도 투자의 기회를 이야기합니다. 사실 그들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소할 수밖에 없는 것은 지난 몇 년간 그들이 내놓았던 수많은 장밋빛 전망에 낭패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책임 있는 해명과 반성이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어느 정부 당국자나 금융기관보다 포털의 한 논객이 더 신뢰받고 존중받는, 스스로 신뢰의 위기와 붕괴를 가져온 그들이 새롭게 출발할 선상은 진정한 반성과 자구의 노력 이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차는 곧 다시 출발합니다.

2008년 12월, 월스트리트의 쓸쓸한 거리에서... 초라하게 겨울 찬바람 앞에선 일자리를 잃은 가장의 어깨에서...인적 드문 새벽시장의 골목에서...기차는 출발합니다.

저마다 목적지는 다르겠지만 누군가는 내리고 또 누군가는 승차의 기회를 잡을 것입니다. 다만 스스로 다스릴 줄 모르고 인내 할 수 없는 욕망이라면 저는 간곡히 기차를 그냥 떠나 보내라고 충고 드리고 싶습니다.

꿈꾸듯 이야기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갈구했던 가련했던 여인 블랑쉬!
'신이 정하신다면 죽은 후 더욱 사랑 하리!' 라는 부라우닝의 시를, 사랑하는 남자의 귀에 속삭여 줄줄 아는 아름다운 그녀를, 남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파국으로 내몰았듯이, 절제할 수 없는 자본의 욕망이 다다를 곳은 또 다른 파국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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