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새 일을 시작한 친구에게 보내는 찬사

 

‘언니, 어디야?’

‘응 집이다’

‘뭐하고 있어?’

‘저녁 먹고 있는데’

‘권숙언니가 김치찌개 먹고 싶단다, 지금 진주서 대포 굴사러 가는 길인데.

밥 주나?‘

‘가시나, 우리 밥 없다. 근데 웬 김치찌개?’

‘권숙언니가 4박5일 홍콩갔다 와서 김치찌개가 간절하단다’

‘그래, 알았다. 조심해서 갔다온나’

 


먹고 있던 밥 대충 입에 쑤서 넣고, 애들은 계속 밥 먹으라하고 쌀을 씻는다.

요즈음 우리 집은 전기밥솥에 밥을 안하고 뚝배기에 하다보니 쌀을 미리 좀 불려야한다.

냉동실 열어보니 아구랑 명태, 우족탕도 있는데 돼지고기가 없다, 가시나 하필 김치찌개라니 혼자 구시렁구시렁.

냉장실 열어보니 다행히 참치통조림이 있다.

갑자기 바쁘다.

방으로 가 아이들에게 빨리 먹으라고 얘기하고 돌아와 다시마, 멸치로 육수를 내고 마늘 까고 이것 저것 준비한다. 배추 데쳐 무치고, 상 들고 나와 설거지하고 방 대충 치우고.

연신 애들 이름 부른다, 장난감 제자리 두라고.

정신없는 중에도 나몰라하는 애들에게 윽박지르고 밥은 뜸 들고 있고.

‘언니, 대문 열어놨네?’라며 세 친구 온다.

한 친구는 동갑이고 둘은 한 살, 4살이 적은 친구이다.

그렇게 후딱 차려진 밥상에 저희 셋이 앉아 늦은 저녁을 먹는다.

‘야, 그래도 다행이다. 배고플 때는 뭐든 맛있잖아. 찌개 괜찮나?’

‘쥑인다, 나물도 너무 맛있네. 홍콩이고 대만이고 김치를 설탕에 절였는지 달기만하고 이런 김치찌개 먹고 싶어 죽겠더라’

4박5일 동안 홍콩으로 여행사 가이드로 갔다 온 친구가 말한다.

그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

‘네, 아버지 사천 친구집인데 조금 있다 갈게예’

전화 끊고 다시 밥에 김치 올려놓으며 그런다.

‘내가 오늘 새벽에 홍콩갔다 진주 도착했는데, 자고 일어나 굴 사오라고 하시더니 이 바라. 아버지 엄마 때문에 데이트 할 시간이 있겠나? 오늘 배추 200포기 왔다고 빨리 오라신다’

상 물리고, 그릇 씽크대 대충 담그고, 과일 들고 와 이야기 꽃을 피운다.

애들은 간만에 보는 엄마친구들 옆에서 이 장난감 가져왔다, 저 장난감 가져왔다하며 저희끼리 분주하다.

전화가 온다.

‘내가 못산다 못살아, 아버지다’

그렇게 간만에 모여 이야기 하려다 일어선다.

세 친구 모두 컴퓨터 편집일을 하는데 동갑내기 친구는 얼마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여행사 가이드 시험을 친다고 서울로 가더니, 합격을 하고 2차 면접을 앞두고 아는 분의 소개로 홍콩으로 임시 가이드 역을 맡은 것이다.

서른아홉 노처녀가 결혼할 생각은 안하고,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여행사 가이드 한단다.

정말 해보고 싶었던 일이였단다, 그렇게 주말이면 구석구석 차 몰고 다니더니.

자기 일을 찾아서 좋고, 그 일을 할 수 있어서 더 보기가 좋다.

아직은 부모님 슬하에 막내로 마음 여린 친구이지만, 제 길 잘 닦으며 갈 것이다.

아버지 말씀에 순순히 나서는 양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서른아홉 내 친구가.

새 일을 시작한 친구에게 찬사를 보낸다, 용기와 꿈을 꿀 수 있는 니가 최고라고.

 


대문 닫고 들어오면서 치자열매가 주홍빛을 발한다.

얼마 전까지 초록열매 보며, 저게 이 겨울을 이겨낼까 싶었는데.

어느새 주홍빛이 붉어지고 있다.

이 추위에도 제 할 일은 한다, 결실을 단단히 보겠다는 것이다.

내일부터 한파로 영하권에 접어들고 춥다고 하는데.

치자열매는 더 붉어질 것이다.

고통과 시련을 고스란히 온 몸으로 받아들이면서 옹골차게 여물어 갈 것이다, 치자열매 한 알로도 노을되어 온통 노랗게 세상을 물들일 것이다.

하는척이 아니라, 제 일이기에 온 신명을 쏟아내기에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사랑스럽다, 치자를 닮은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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