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민원’이 이유.. ‘자금난’에 ‘시 압박용’ 등 추측 다양

▲ 사천시 향촌동 일원에서 농공단지를 조성하고 있는 삼호조선이 7월10일자로 공사 중단과 함께 시공업체 철수를 선언했다. 겉으로는 마을주민들의 민원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실상 그 속내는 다른 곳에 있을 것이란 추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향촌농공단지 조성 공사를 맡고 있는 삼호조선(주)이 암반 발파를 지역주민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를 들어 현장사무실을 폐쇄하는 강경책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사천시와 관련 업계, 또 해당 지역주민들은 그야말로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지금까지의 공단조성 과정에 더 큰 고비도 많았거니와 무엇보다 공사의 시급함을 강조해온 삼호 측이 “이럴 여유가 없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따라서 “뭔가 다른 속셈이 있을 것”이란 추측이 나돌고 있다. ‘현장 철수’를 선언한 삼호조선의 주장을 비롯해 해당 마을주민 등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삼호조선, 7월10일 기준 시공업체 철수해.. 이유는 ‘민원’

사천시는 지난 2006년 향촌동과 사등동 일원에 농공단지를 조성하기로 하고 삼호조선과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농공단지를 특정 민간기업인 조선업체가 개발해 전적으로 사용토록 한 것을 두고 특혜논란도 일었지만, 사천시는 삼천포지역 경제 활성화란 명분으로 불만들을 눌러 왔다.

농공단지 조성 과정에 가장 큰 걸림돌은 해당 지역에서 이미 기업활동을 하고 있는 소규모 조선업체(HK조선 등)였다. 이 업체는 큰 기업 유치에 따라 일방적으로 쫓겨나야 하는 상황에 맞서 사천시를 상대로 수년째 법적 공방을 벌여 왔다.

▲ 향촌농공단지 조성 현장에는 인부는 없고 중장비들만 몇 대 남아 있다.

그러던 중 “가능한 협의점을 찾아 보라”는 법원의 조정 결정에 따라 피고보조참가인이자 사실상 이해당사자인 삼호조선과 협의한 끝에, 6월 접어들어 대략의 합의점을 찾았고 이를 공식화하는 과정에 있다.

이에 앞서 지난해 9월25일에는 향촌농공단지 착공식도 가졌다. 따라서 더디기만 하던 향촌농공단지 조성 사업이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참고로 이번 사업의 시행사는 삼호조선이며, 시공사는 (주)삼정기업이다. (주)삼정기업은 다시 육지부와 해상부 공사를 둘로 나누어 각각 A와 B 업체에 맡겼다.

그런데 최근 향촌농공단지 조성 사업을 맡고 있는 삼호조선의 K임원이 몇몇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보내어 현실 여건 상 공사를 중지할 수밖에 없음을 호소했다. 호소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동안 기존 조선업체와 오랜 갈등을 빚어 왔으나 최근 합의점을 찾았다. 그리고 인근 향촌동 모례마을 주민들의 여러 가지 요구사항도 다 들어주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을주민들이 공사를 위한 발파를 문제 삼으며 공사를 반대하고 있다. 사천시의 행정지도를 바꿀 수 있는 대형 프로젝트를 87가구 마을에서 반대하는 것은 시대적 착각이다. 사천시의 정책기조도 너무나 어설프고, 계획성과 추진동력이 떨어진다. 삼호조선으로서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사천시민이 열망하고 새로운 시장이 정책 목표로 삼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광양공장의 사천 이전을 검토해 왔으나, 발파작업을 계속 방해할 경우 이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갈 것이다. 이에 앞서 2010년7월10일부터 본 공사 시공업체 전원이 철수한다.”

▲ 향촌농공단지 조성공사 현장사무소에는 적막감만 감돈다.
결국 삼호조선은 인근 마을주민들의 발파 반대 이유를 들어 공사를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나아가 사천시를 향해 섭섭한 마음도 드러냈다. 그리고 실제로 시공업체들이 전격 철수했다.

사천시 “이해 안 돼”.. 마을주민 “괘씸하다”

기자가 지난 14일 공사현장을 방문했을 때 공사 인부는 없이 몇몇 중장비들만 멈춘 상태로 있었다. 또 제조 중이던 콘크리트 구조물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현장사무소에는 시공업체에서 파견한 현장소장만 유일하게 남아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시공업체인 (주)삼정기업의 김주환 소장은 “지금까지 일한 것에 대한 정리가 필요해 남았을 뿐 내일이면 나도 철수한다”라고 말했다.

이상 살펴본 대로라면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향촌농공단지 조성 사업에 큰 차질이 생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좀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지난 시간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기존 조선업체와의 갈등이 풀렸는데, 마을주민들이 발파를 반대한다고 현장을 철수한다? 나아가 올해 말까지 광양부두에 있는 블록제조공장을 무조건 어딘가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어서 다급한 쪽은 삼호조선인데, 무슨 배짱일까?’

▲ 모례마을대책위 박순복 위원장이 발파를 둘러싼 주민들의 민원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보도자료를 제공한 임원은 삼호조선의 상황이 긴박함을 호소한 바 있다. 전남 광양시 컨테이너부두에 있는 블록공장을 감사원 지적에 따라 연말까지 비워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체부지 조성이 시급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사천시의 입장은 뭘까? 주무부서인 공단조성과에서는 당분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다음은 박상철 과장의 말이다.

“겉으론 마을주민들 핑계를 들었는데, 말이 안 된다. 오늘(14일) 오전에 발파 전문가를 초빙해 마을주민들에게 설명회를 가졌다. 그 결과 ‘정확한 발파작업 기준만 지킨다면 반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마을주민들로부터 받아 냈는데, 시공사 철수를 강행하는 것은 의외다.”

그 동안 사천시는 삼호조선 유치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여기에 정만규 사천시장도 당선자 신분일 때부터 향촌농공단지 조성에 각별한 관심을 뒀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에는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 이는 결국 삼호 측이 ‘이번 민원은 사천시에서 알아서 해결해 달라’며 떠넘기기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여기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셈이다.

▲ 공사현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민가에서 울타리가 있는 공사현장까지 50미터가 채 되지 않는다.

모례마을주민들은 한 마디로 “괘씸하다”는 반응이다.

“당연히 발파를 반대했다. 아무런 통보도 없이 갑자기 발파를 하는 바람에 마을사람들이 깜짝 놀라 집을 뛰쳐나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9일에 약속하기를 서로 좋은 방안을 찾아보고 12일에 다시 만나 협의하기로 했는데, 그 새 철수를 결정해 버렸다. 그리고는 마을사람들을 욕 먹이고 있다.”

이는 모례마을대책위 박순복 위원장의 말이다. 박 위원장은 “삼호조선이 마을주민들을 핑계 삼아 현장에서 철수한 것은 매우 불쾌한 일”이라며 조만간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자금난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 “별로 바쁜 일 없어” 추측 난무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일이 “자금난을 겪고 있는 삼호조선이 사업을 강행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삼호조선의 주거래은행은 경남은행과 산업은행인데, 이 가운데 어느 한쪽에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이야기가 업계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 공사현장에는 중장비뿐 아니라 즉석에서 제작하던 콘크리트 구조물까지 흩어져 있다.
이와 관련해 삼정기업과 두 하청업체에 공사비 처리가 원만히 되고 있는지 확인한 결과 엇갈린 답변을 들었다. 더욱이 ‘공사 중단’ 통보도 갑자기 받아,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지를 놓고 혼란을 겪는 듯 보였다.

하지만 삼호조선 측에서는 “자금조달에 문제가 없다”며 이러한 추측이 사실무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나아가 공사 중단 이유가 주민들의 발파 반대에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물론 다른 이유를 꼽는 주장도 있다. 삼호조선이 별로 바쁠 게 없다는 것이다. 최대 걸림돌이던 HK조선과의 갈등이 풀렸고, 일부 해안공사까지 마무리된 상황이라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공사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광양공장 대체부지로는 향촌이 아니어도 삼호조선 자체 부지로 대신할 수 있다는 주장도 덧붙인다.

어쨌든 7월15일 오후 현재, 삼호조선이 시행하는 향촌농공단지 조성 사업 현장에는 모든 공사 관계자가 철수했다. 그리고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보내 회사 측 입장을 밝힌 임원은 연락두절이다. 이는 취재기자뿐 아니라 사천시 관계 공무원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보인다.

▲ 사천시는 공사현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우회도로를 뚫어 놓았다. 그러나 언제 이 길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 막막한 상황.
결국 삼호조선이 사천시를 향한 불만까지 드러낸 셈이다. 이런 불만은 K임원이 작성한 보도자료에도 일부 나타나 있다.

“사천시에서 시 정책사항으로서 농공단지조성 시에는, 기업체보다 먼저 각종 민원에 대한 대처를 하여 기업유치에 장애물제거가 먼저이나, 행정지원이 전혀 없이 법으로만 해결하려고 소송만 진행하였음”

삼호조선의 공사 중단 선언과 시공업체의 현장 철수, 과연 그 속내는 어디에 있을까. 사천시와 마을주민들을 압박하기 위한 단순한 시위인지, 아니면 재정난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인지 등 그 이유에 따라 이번 사태의 장기화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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