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름이 있을 수 없는 진리에 머물러라'

▲ 삼정산에 바라본 지리산 능선 중간. 부분에 천왕봉과 중봉이 보인다.

지리산 80리 종주 능선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산이 삼정산(1182m)입니다. 지리산의 주봉 천왕봉(1915m)의 북쪽 사면에 정면으로 위치하고 있습니다. 행정구역은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입니다. 양정 음정 하정을 합쳐 삼정리인데 이곳까지 함양에서 노선버스가 운행합니다. 삼정은 지리산 백무동 들어가는 곳에서 곧장 4km 정도 더 올라 가야만 합니다.. 삼정산에는 영원사와 천하 제일 수행처인 상무주암(上無住庵)이 있습니다. 그리고 상무주암 지나서 왼쪽으로 빠지면 문수암, 삼불사, 실상사로 이어지는 사찰 순례길이 나옵니다.

▲ 영원사
▲ 영원사에서 바라본 능선

내가 말한 영원사를 중심으로 한 순례길보다는 일반적으로 여행자들에겐 실상사를 중심으로 사암 순례길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사암 순례길 중심에 삼정산이 있죠.
즉. 실상사(實相寺)부터 약수암(藥水庵), 삼불사(三佛寺), 문수암(文殊庵), 상무주(上無住), 영원사((靈源寺), 도솔암(道率庵) 등, 사암 7개를 꿰고 있으면서 사암들은 모두 천왕봉이나 반야봉 또는 가야산을 바라보고 있어 전망이 매우 뛰어납니다.

한편 영원사 향해 가던 중 영원사 표지석 전방 약 100미터 지점에 왼쪽 골짜기를 건너면 희미한 산길이 이어집니다. 좁은 길이지만 평탄한 길입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벽소령 능선 오르는 길에 도솔암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꿈속의 암자인가? 도솔암에 서면 바로 이곳이 선경이요, 피안의 세계라는 것을 느끼며 가슴 속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오묘한 기운이 솟을 겁니다. 이곳 도솔암은 비구와 비구니 스님이 해를 걸러 순차적으로 하안거 기도처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외부인은 출입금지랍니다.

삼정산에서 보는 지리산 80리 능선 조망, 그리고 도솔암, 영원사, 상무주암, 문수암, 삼불사, 실상사 사찰 순례. 참으로 경험하기 어려운 좋은 추억이 될 것입니다. 영원사에서 상무주암 넘어 가는 영원령 고개는 마치 오탁예토(汚濁穢土)의 속세와 서방정토(西方淨土)의 분수령쯤 될까요? 마음속에서 불현듯 솟구치는 인간본성의 선(善)을 생각하며 꿈결 같은 능선 길을 걸어갑니다. 영원령에서 왼쪽으로 접어들어 뱀사골로 가는 옛길은 이젠 희미한 흔적만 남았습니다. 어느 것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귀중한 유산들입니다.

상무주암은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198년 봄부터 1200년까지 머물렀다고 합니다. 지눌은 여기서 속세와의 모든 인연을 끊고 오로지 선(禪)에만 전념하였습니다. 해발 1100m에 자리한 상무주암 근처엔 서너 군데의 참선대(參禪臺)가 있습니다. 일망무제의 시원함으로 지리산 능선을 향하는 시선은 가히 신선의 자리로 여겨집니다. 이로 하여 지눌스님은 이곳 상무주암을 두고 “그 경치가 그윽하고 조용하기가 천하제일이라 참으로 참선하기 좋은 곳이다.”라며 상무주암을 천하제일갑지라 일렀습니다. 순천 송광사의 보조국사비문에 그 절승의 기막힘을 후에 글로 남겼습니다.

▲ 삼무주암 앞의 석간수

상무주(上無住)의 상(上)은 부처님도 발을 붙일 수 없는 경계요, 무주는 머무름이 없다는 뜻이니 중생은 속세의 갖은 물욕과 번뇌와 어리석음에 머물 수 있지만 수행자는 그 머무름이 있을 수 없는 진리에 머문다는 의미랍니다.
수행의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나는 상무주를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상(上)은 부처님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높은 경지요, 무주(無住)란 '머무르지 않는다'는 뜻이니, 좋은 자리에 그냥 머물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함을 경계하는 게 아닌가? 즉 생각과 몸이 어느 한 곳에 갇히지 아니 하고, 자유로운 새처럼 사유무량(思惟無量)이면 고집과 독선을 벗어나 더욱 도량 넓은 인간이 되겠지.’
▲ 상무주암
▲ 상무주암의 참선대

삼정산 등반을 마치고 엄천강가의 동강식당에서 서울에서 오신 아주머니 4 분을 만났습니다. 지리산 둘레길을 순례하는 중이랍니다. 그런데 승용차를 좀 태워 달라고....큰 마음먹고 서울에서 이곳 순례길에 나섰는데, 차를 이용하신다는 게 이해가 안 되죠. 이유인즉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이어진 순례길 중간 중간이 너무 지루하고 햇볕이 뜨거워서 이곳 동강에서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의 지리산 민간인 희생자 유적지까지 걷기가 싫대요. 그렇습니다. 벽송사 고개를 넘어서부터는 지루하고 뜨거운 시멘트와 아스팔트길이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 오봉 계곡까지 약 4km에 걸쳐 이어집니다. 이후 금서면 가현리를 넘어 금서면 수철리에서 지리산 종주길은 끝납니다. 지리산 둘레길을 잘 알고 오세요. 중간 중간 지루하고 딱딱한 순례길에 싫증이 난다면 다른 순례길을 찾아 보는 것이 더욱 즐거운 여행길이 될 것입니다.
▲ 반야봉

그 서울여자 4분에게 설명 드렸습니다. 이곳에서는 차라리 지리산 둘레길보다 더 아름답고 유서 깊은 산길과 암자와 골짜기가 있으니까, 어느 한 지점을 숙박지로 정하고 2박 3일 동안 이곳 저곳을 찾아 보시라고... 이 곳 삼정을 중심으로 광대골, 백무동, 벽소령, 영원사, 뱀사골만 하여도 2박 3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지리산 둘레길이 좋지만 이처럼 일직선 순례길이 아니라 얽히고 설킨 입체적 순례길을 체험해 보시라고...

맑고 시원한 엄천강의 동강다리 건너 오른쪽 독바위 양지쪽으로 빠지면 노장대 빨치산 루트길은 또 다른 역사의 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독특한 산행입니다.

올여름 휴가철에 멋진 추억 만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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