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필 50년 맞은 한국화가 풍정선생을 만나다

올해로 화필 50년을 맞은 한국화가 풍정(豐汀) 최정민(69) 선생이 작품 활동에 한창이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쳐선 안 된다”며 평생 개인 작품전을 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풍정선생은 사천예술촌 개촌 6주년을 맞는 오는 12월에 8폭 병풍을 완성해 일반인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사천시 정동면 풍정마을에서 태어난 풍정선생은 효당 최범술 선생에게서 차도를 배웠고, 효당의 소개로 한국화의 대가였던 의재 허백련 선생으로부터 한국화를 배웠다.

올해로 화필 50년을 맞은 한국화가 풍정(豐汀) 최정민(69) 선생이 8폭 병풍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중일 국제교류전, 아시아 미술초대전, 경상남도미술대전 창립전, 경남한국화가협회전 등에 참여했고, 사천문화원 창립이사, 사천수양제 추진위원, 경남한국화가협회장을 지낸 풍정선생을 11일 사천예술촌(촌장 임선숙)에서 만났다.

그는 그리던 그림을 멈추고 잠시 쉬고 있었다. 집중력이 떨어질 땐 즉시 붓을 놓는다는 것. 때마침 찾아온 객에게 풍정선생은 젊은 시절 다솔사에서 효당선생을 만난 이야기부터 들려줬다. 초대 국회의원을 지낸 효당선생은 당시 다솔사에서 주지로 있었단다.

"저 나무가 자라면 너도 그만큼 자라 있을 게다"

풍정 작품 - 우후청자(雨後淸姿)
“스승을 찾아왔다고 하니까 처음엔 껄껄 웃으시더라고. ‘이놈 봐라’ 했겠지. 그래도 기분은 좋았던 모양이야. 이것저것 묻더니 받아주더라고. ...하루는 다솔사 뒷산 차밭에 갔는데 차나무 새 어린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어. 선생님이 ‘차도가 따로 있지 않다’며 그 나무에 똥을 주라 하더군. 처음엔 뭔 소린지 몰라 시큰둥했는데, 나중에 ‘저 나무가 자라면 너도 그만큼 자라 있을 게다’라는 말씀을 듣곤 힘든 줄 모르고 똥을 퍼 날랐던 기억이 나.”

그리고 다음은 의재선생 얘기로 자연스레 옮겼다.

“내가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효당선생이 의재 허백련 선생에게 가보라더군. ‘의재’ 하면 그 당시에도 꽤 이름이 높았거든. 그런데 두 분은 의형제로 지낼 만큼 친한 사이였던 모양이야. 편지를 한 장 써 주시길래 광주로 찾아갔지. 의재선생이 편지를 보고는 아무 말이 없어. 시중을 들면서 마냥 기다렸지. 한 보름 지나서 ‘그림 그리고 싶으냐’ 물어서 그렇다고 하니 또 말씀이 없으셔. 다시 사흘쯤 지나니까 그제야 체본(體本)을 주셨지.”

풍정선생은 당시 긴 시간을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효당선생의 가르침 덕분이었다고 했다. 의재선생이 나이가 많아 새 제자를 받기 어려운 형편이어서 적당한 꼬투리가 잡히면 자신을 내 칠 생각이었다고. 하지만 효당에게서 배운 차도(茶道) 덕분에 실수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가 말하는 차도는 굳이 차 마실 때의 예법 정도로 묶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살면서 옳음을 쫓고 착한 마음을 갖는 것 자체가 차도라는 것. 또한 그림을 그리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기교보다는 삶에 임하는 마음과 정신이 더 중요하다고 풍정선생은 강조했다.

"학자는 지식에 공덕을 쌓아야 오를 수 있는 경지"

그래서 풍정선생은 예술가보다는 예술학자이고 싶어 했다. 학자는 지식에 공덕을 쌓아야 오를 수 있는 경지라 믿었던 그는 고향에서 장의사 일을 시작했고,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생각해도 장의사를 했던 것은 잘한 선택이었어”라며 흐뭇하게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2006년 들어 갑자기 간암말기 판정을 받았다. 의료계가 모두 힘들다고 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직접 재배한 약초를 골라 다양한 실험 끝에 몸에 맞는 약을 만드는데 성공했고, 그 덕분에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고 한다.

현재 사천예술촌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풍정 최정민 선생은 이번 ‘8폭 병풍’ 작품을 시작하며 제(祭)를 올렸다. 지신에게 올리는 제였다. 그는 “그래야 머리가 맑고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번 작품의 주제는 절경집촌(絶景集村). 빼어난 풍경을 모두 모으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평소 그의 그림의 특징처럼 이번에도 사실화가 아닌 상상화가 될 것이라고. 그의 작품은 12월에 사천예술촌 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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