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시인의 배우며 깨달으며]

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해마다 2월이면 초등학교 새내기가 될 아이들에게 입학 통지서가 날아듭니다. 가까운 학교에 배정을 받습니다. 아이들 마음은 부푼 기대감으로 설렙니다. 풍선처럼 두둥실 하늘 높이 떠오릅니다. 커다란 희망을 품습니다.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 문구점으로 갑니다. 가방을 사고 공책과 연필, 지우개와 칼 따위의 학용품을 삽니다. 어떤 아이는 옷과 신발까지 삽니다. 

윤석중 작사, 손대업 작곡의 동요 ‘새 신’이 생각납니다. “새 신을 신고 뛰어 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새 신을 신고 달려 보자 휙휙 단숨에 높은 산도 넘겠네” 신납니다.

며칠 뒤면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공간, 새로운 친구를 만납니다. 마음이 부풀고 즐거움이 가슴 가득합니다. 얼마 전만 해도 기저귀 차고 공갈 젖꼭지 입에 물고 엉금엉금 방바닥을 기어다니던 녀석들이 어느새 학교에 간다고 난리입니다. 

나무에 새롭게 돋는 움을 가까이서 본 적이 있을까요. 움이란 신기하고 놀라운 생명력입니다. 생김새를 자세히 보면 무척 귀엽고 예쁩니다. 아이들이 이와 빼닮았습니다. 앙증맞은 움이 어느새 탐스러운 꽃을 피워 사랑스럽듯이, 멀리서 아이들 재잘거리며 떠드는 소리가 들리면 그저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육이오 전쟁이 끝난 후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켜 베이비부머라고 합니다. 이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은 무척 많았습니다. 큰 도시에서 국민학교를 다닌 나는 학생들은 많고 교실은 부족해 2부 수업을 했습니다. 

같은 학년의 아이들이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등교를 했던 것입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이면 운동장에는 고무줄놀이, 술래잡기, 공차기 하는 아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점심시간에 운동장을 쓰는 학년을 제한했습니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모습. (일러스트=뉴스사천 DB)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모습. (일러스트=뉴스사천 DB)

‘이번 주 월·수·금요일 점심시간은 1·3·5학년이 운동장을 사용하고, 화·목요일은 2·4·6학년이 사용한다. 다음 주 월·수·금요일 점심시간은 2·4·6학년이운동장을 사용하고, 화·목요일은 1·3·5학년이 사용한다.’ 이런 식이었습니다. 한 집에 아이들이 적어도 네댓 명은 되었으니까 어마어마한 수치였습니다.

지금 내가 사는 마을에는 몇 년 전 이사 온 아이들 셋을 둔 가족이 있습니다. 초중학생이고 키가 크니까 귀여운 맛은 좀 덜하지만 그래도 이따금씩 아이들 소리를 들으니 사람 사는 동네 같습니다. 어린이 보기가 하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젊은 세대가 거주하는 아파트 인근에 가면 아이들 뛰노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 했지만, 손주 보듬는 맛과 아이들 재롱에 피어나는 웃음꽃과 어찌 비할 수 있겠습니까.        

바야흐로 우리는 결혼을 하지 않는 ‘나홀로족’들이 급격히 불어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결혼을 했더라도 출산을 기피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일시적인 재정 지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젊은 층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희망 사항을 기성세대는 진지하게 듣고 논의를 해야 합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헤아려 매듭을 푸는 자구책을 마련해야지 일회성 격려로는 난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마을 골목을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장난치고 웃고 우는 소리를 마음에 담아 봅니다. 역동적이고 신명나는 그림입니다. 삶의 미래, 나라의 미래를 염려한다면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을 꾸짖고 비판하는 꼰대정신을 내려놓고 진정어린 대화로 물꼬를 터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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