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교사와 부모의 만남, 언제까지 불편해야 하나?

“엄마, 내일 선생님께서 가정방문 오신다는데요?” “뭐, 가정방문? 초등학교도 안 하는 걸 와 중학교에서 한다쿠네. 아이고 우짜지..”

지난주 후반, 사천의 한 중학교에서 한 동안 사라졌던 가정방문을 부활시키자 학부모들 사이에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뜬금없이 웬 가정방문이냐’는 얘기부터 ‘맞벌이부부라서 우리는 힘들다’는 반응, 또 어떤 이로부터는 ‘좋은 취지인 것 같긴 한데 너무 갑작스럽게 하니 당황스럽다’는 얘기도 나왔다.

부모로서 자녀의 선생님을 만나는 일이 부담스럽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학교 한 번 찾아가기도 힘든데, 이참에 선생님 뵙고 아이의 성적이나 진로문제를 상담하겠다는 반응이었다. 또 "아이가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는 적극적인 생각을 가진 학부모다.

초등학교도 안 하는 '가정방문', 왜 다시 나왔나?

가정방문을 부활시킨 학교로선 이런 부모들이 반갑겠다. 기획의도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끊어졌던 가정방문을 다시 시작한 사천중학교 김정규 교장의 말을 들어보자.

“예전엔 학부모의 심적 부담이 컸던 게 사실입니다. 굳이 촌지가 아니더라도 뭔가 대접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시절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학부모들도 많이 당당해지고 생각이 자유로워졌지요. 따라서 ‘학생들의 바른 지도를 위해선 가정방문이 필요하다’는 교사들의 주장에 일 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천중학교 소속 교사가 아닌 다른 학교 교사도 가정방문이 꼭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가정환경을 직접 보거나 부모와 대화를 나눠보면 ‘확~, 와 닿는 게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교사들이 그런 열정을 갖는 게 더 중요하다고도 덧붙였다.

두 교사의 얘기를 종합하면, ‘교육적인 차원에서 아이들의 환경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고, 예전에 비해 학부모들도 당당해진 만큼 가정방문의 부활이 이상하지 않다’ 쯤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가정방문이란 말에 화들짝 놀라는 학부모도 있지만 되레 잘 됐다는 반응도 있었다. 사천중 조덕렬 교사가 한 제자의 집을 찾아 부모에게 뭔가 설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건 네 생각이고~’라는 입장을 가진 부모들이 많은 듯하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나 자녀의 선생님이 부담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 학부모총회나 참관수업 등 학교에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도 ‘형식에 그칠 때가 많았노라’는 비판도 뒤따른다.

또 어떤 이는 ‘사생활 침해’ 주장도 한다. 아이들이나 그 부모나 숨기고 싶은 것도 있는 법인데 다 보여줄 필요가 뭐 있느냐는 것이다. 학부모상담이라면 학교나 다른 곳에서도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가정방문 부활’을 놓고 학부모들, 특히 여성 학부모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는 한 교사의 가정방문 길을 동행했다. ‘요즘 가정방문은 어떤 모습이며 부모들은 이를 어찌 생각할까’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다.

“뭐하고 있었네?”.. “니 방은 오데고?”.. “그라모 지금 아빠랑은 함께 안 살고 있네?”.. “엄마가 많이 힘드실 낀데, 니가 더 잘해야지.”

공교롭게도 동행 첫 가정에는 부모 없이 학생만 홀로 있었다. 조덕렬 교사는 미리 준비해 간 학생정보카드를 살피며 이런저런 기본적인 것들을 물었고, 이내 그 학생에게 최근 큰 변화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지난해 부모가 이혼했고, 지금은 엄마와 외할머니만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정보카드로는 알 수 없던 숨겨진 아픔이..

조 교사는 제자의 엄마가 생계를 어찌 꾸려나가는지, 제자 본인은 어떤 꿈을 이루고 싶은지, 그러기 위해선 이러저러한 것을 더 준비하고 채워야 한다는 내용의 대화를 나누고는 집을 나왔다.

“가정방문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기록상으론 평범하고 단란한 가정처럼 보이지만 나름 아픔이 있지 않습니까? 학생이 직접 기록한 내용만 보고는 다 알 수 없거든요. 학교에서 상담하는 시간도 있지만 대부분 이런 민감한 얘기는 잘 안 합니다.”

그리고는 다음 가정이다. 조 교사는 가정방문할 순서를 가능한 짧은 동선이 되도록 학생들에게 직접 짜 달라고 부탁했다. 올해 처음 부임한 학교라 학교 주변 지리에 밝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학생들마다 선생님 방문 시간을 대충 짐작할 수 있어 좋단다.

“예? 기자하고 같이 온다고요?”

선생님이 찾아온다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운데 기자와 동행한다는 얘기에 놀라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을까. 다행히 어머니는 “괜찮다”며 받아 주었다.

제자들을 이해하기에 학생들의 정보가 담긴 카드만으론 부족하다는 게 조덕렬 교사의 생각이다. 다음에 찾아갈 학생의 아파트 입구에서 기록을 살피는 조 교사.

중학교 1,2학년 연년생 아들을 두고 있는 박진희 씨는 공군조종사인 남편을 따라 올해 초 사천에 왔다. 그래서 유독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궁금했다. 하지만 가정방문 얘기를 듣고는 무척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웠단다.

“처음엔 부담 그 자체였죠. 선물까진 아니더라도 다과정도는 차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이가 ‘음료수도 준비하지 말라’고 했다고 해서 그냥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어머니와 선생님의 대화에 아이도 새새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일사천리로 이어졌다. ‘바닷가 아이들이 조금 드세다던데 여기는 어떠냐’는 것부터, ‘전학 왔다고 특별히 괴롭힘을 당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줄줄 쏟아내고 나니 다음은 공부 문제가 남았다.

“얼마 전 시험 있었잖아요. 얘 성적이 어느 정도 나왔나요? 이전 학교와 비교해보고 싶은데..”

대한민국 보통의 학부모가 품을 수 있는 궁금증까지 풀고 나니 어느 새 30분이 흘렀다.

조 교사는 전날에도 밤9시까지 학생들의 가정을 찾아 다녔단다. 그리고 이날까지 30여 명 모든 학생들의 가정을 찾아갈 생각이라고 했다. 저녁과 밤 시간이 부담스럽지만 식사를 한 것처럼 해서라도 모든 학생들을 다 만날 요량이었다.

교사와 학부모 만남은 '무죄', 그러나 꼭 필요한 건 '공감'

지난주 갑작스런 ‘가정방문’ 소식에 화들짝 놀랐던 학부모들 분위기가 이제는 조금 수그러들었겠다. “괜한 오해 살 일”이라며 가정방문을 꺼리던 교사들도 이젠 마음 후련하리라.

하지만 그저 ‘다 지나갔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면 속이 허전할 일이다.

뭔가 끊어졌던 일을 다시 시작할 때는 명분이 필요하다. 명분은 남에게 설명하기에도 필요하지만 스스로를 설득하는 힘이기도 하다. 나의 명분에 상대가 공감한다면, 그 일은 끝을 꼭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음이다.

작은 표정 하나에서도 그 집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한 학생의 집 거실에 걸린 글귀.
이번 가정방문을 두고 학교 측은 얼마나 자기 명분을 쌓았고 또 학부모들에게 그 뜻을 전했을까. 몇몇 상황으로 볼 때 조금은 부족했고 서툴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실제로 오후수업을 포기해가며, 이틀 또는 사흘이라는 짧은 시간에 가정방문을 마쳐야 하는지를 따지는 학부모도 있었다.

반대로 학부모들도 이번기회에 가정방문이란 것에 관심을 더 둘 필요가 있겠다. 교육의 가장 기본 도량은 가정이라고 했다. 학교와 가정이 충분히 소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러나 학교 한 번 찾아가기를 겁내는 게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현실 아닌가.

촌지에 식사에 선물에, 이런 구시대적 유물에 학교와 교사와 학부모, 나아가 우리 교육이 갇혀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교육을 논하는 일이라면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는 더 많은 만남이 있어야 하고, 가정방문은 그런 만남 중 하나로 이해되어야 한다.

굳이 '그 만남이 꼭 가정방문이어야 하는가'라고 따진다면, 그땐 이미 가정방문을 뛰어넘는 또 다른 만남과 소통이 만들어지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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