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뉴스사천=정삼조 시인] 적군인지 아군인지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는 가을이 점령군처럼 다시 왔다. 와서는 온 세상을 다 차지해 버리고 시치미 떼고 있다. 사람이 공들여 키운 국화 이외에도, 나태주 시인의 시구에서처럼 자세히 보아야 보일 법한 저 작고 국화 비슷한 들국화며 개미취 쑥부쟁이 구절초들이 산과 들에 군데군데 자리 잡았다. 푸른 잎들이 지기 바로 앞에 보여주는 장엄한 단풍도 이 계절이 가진 것이다. 

가을에는 하늘도 특별하다. 어느 때나 하늘이 없으랴만 가을 하늘은 특히 티가 없다. 그냥 파랗다. 윤동주 시인은 그 가을 하늘을 「소년」이란 시에서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고 노래했다. 윤 시인께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라고 노래한 하늘도 아마 가을 하늘이 아닐까. 아무리 바쁘게 살아도 하루 한 번은 유심코 하늘을 보자.

가을을 가장 늦게까지 장식해 주는 식물은 아무래도 억새다. 겨울바람에도 그 바람에 씨를 날린다. 다른 것이 땅 밑에 숨어도 억새만은 삭막한 산과 들을 끝까지 지킨다. 황동규 시인은 시 「이 환장하게 환한 가을날」 1연에서 이 억새를 두고 ‘이 환장하게 환한 가을날 화왕산 억새들은/ 환한 중에도 환한 소리로 서걱대고 있으리/ 온몸으로 서걱대다 저도 몰래/ 속까지 다 꺼내놓고/ 다 같이 귀 가늘게 멀어 서걱대고 있으리’라고 노래하고 있다. 억새의 강한 생명력, 서로 의지해 살아가는 친화력, 그것들이 모여서 만드는 장관(壯觀)을 노래한 것이리라.

필자의 첫 시집에도 「억새」라는 시가 실렸다. 가을 이야기와 어울릴 듯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소개한다. ‘억세게 운 없던 사내/ 죽어 억새 되었다네/ 울어줄 사람 없어/ 저 혼자 흔들흔들 울고 있다네// 살아서 외로웠던 사내/ 모여 억새 되었다네/ 볼품 없는 꽃일망정/ 질기게 키워/ 그 꽃 구름처럼/ 모여있다네// 흔들려도 흔들려도/ 꽃씨 날리면서 흔들린다네/ 운 없는 자손/ 원 없이 불리면서/ 흔들린다네// 골짜기에 산등성이에/ 임자 없는 무덤 위에/ 억새는 산다네/ 억세게 운 없던 사내/ 많이도 죽었다네’

정일근 시인도 「억새」라는 시를 썼다. 마지막 몇 줄만 인용한다.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섰는 억새/ 때로는 억새처럼 손 흔들며 살고 싶은 것이다./ 가을 저녁 그대가 흔드는 작별의 흰 손수건에/ 내 생애 가장 깨끗한 눈물 적시고 싶은 것이다’. 억새를 ‘손 흔들어 주는 존재’로 노래하면서 답례하는 그 손수건에 ‘깨끗한 눈물’ 흘리고 싶다고 노래한다. 욕심 없는 순수함이 읽힌다. 그것이 순정(純情)일까.

화려한 꽃 구경은 아니지만, 이 가을에 억새꽃 핀 들길 산길을 거닐고 싶지 않은가. 억새 하나하나 나름대로 차이야 있겠지만 그런대로 평등과 평화를 누리는 자연의 섭리를 조금이라도 눈치챌 수 있다면 그것을 가슴 어딘가에 담아올 수 있다면 이 가을이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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