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 경상대 생명과학부 교수
김재원 경상대 생명과학부 교수

[뉴스사천=김재원 경상국립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면서 과학이 가장 발달한 나라라는 데 의견을 달리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종종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정치나 경제, 사회, 문화에 걸쳐 미국의 사례를 참고하기도 한다. 그런데 환경이 다르면 그 대응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텐데, “미국에서 그리하니까”라며 쉽게 따라 하고 마는 경우를 본다. 그럴 땐 마음이 꽤 불편하다.

그런데 표준단위만큼은 미국은 선진국답지 못하다. 우리는 무게의 기본단위를 그램으로, 길이의 단위는 미터로 시간의 기본단위는 초로 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나라가 이 기본단위를 사용한다. 다만 미국, 미얀마, 라이베리아는 예외다. 특히 미국에서는 거리는 피트나 마일을, 무게는 파운드를 주로 쓴다.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넣을 때도 리터가 아닌 갤런이 기본단위이다. 세계 최대 강국이 표준단위 사용에서는 외톨이가 된 꼴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국제 표준단위를 채택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섣불리 단위를 바꾸었다가 큰 혼란이 생길까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표준단위가 다르면 일일이 환산해야 하는 등 불편하기 짝이 없다. 기계를 수리해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공구가 맞지 않아 아예 손을 못 댈 수도 있다. 국제 표준단위의 사용은 그만큼 중요하다.

요즘 일본에서 ‘방사능 오염 처리수’를 바다에 방류하면서 방사능에 관한 뉴스가 자주 나온다. 방사능의 기본단위는 베크렐(Bq)인데, 이 단위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방사선과 관련된 단위, 용어, 측정, 안전 기준 수치에 관한 국제 표준을 만들어 공표하는 일을 하는 국제기구는 국제 방사선 단위 측정 위원회(The International Commission on Radiation Units and Measurements, ICRU)이다. 여기서 1953년에 만든 방사선 기본단위는 퀴리(Ci)였다. 퀴리는 우리가 퀴리 부인이라 알고 있는 과학자의 이름에서 따온 단위이다. 퀴리 부부가 노벨상을 처음 받을 때 또 다른 한 과학자와 셋이서 공동 수상을 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이 앙투안 앙리 베크렐이다. ICRU가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1973년에 국제 표준단위로 베크렐을 공포했다.

하지만 필자는 지난 40년간 방사능 동위원소를 이용하여 실험할 때마다 베크렐이란 단위보다는 퀴리를 사용했다. 습관적으로 몸에 배서 그렇기도 하고, 오래전 데이터와 비교하기도 편해서였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사려면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을 따라야 한다. 먼저 방사성 동위원소를 사용할 수 있는 규격에 맞춘 실험실과 방사능 취급 면허를 가진 감독자가 있어야 한다. 실험자는 소정의 교육을 받아야 하며, 주기적으로 피폭량 검사를 포함한 신체검사를 받아 보고해야 한다. 사용한 동위원소의 양을 기록하고, 사용한 실험기구와 발생한 쓰레기도 따로 처리해야 한다. 그만큼 엄하고 까다롭게 관리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일본 도쿄전력이란 회사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발생한 ‘방사능 오염 처리수’를 바다에 방류하고 있으니, 경악스럽다. 아주 적은 양의 삼중수소 동위원소라 하더라도 구매에서 사용, 폐기까지 온갖 조건을 맞추어서 실험에 사용해 온 사람의 경험에 비췄을 때 말이다. 바다에 버려도 아무런 해가 없다?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