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뉴스사천=정삼조 시인] 바람 잘 날 없는 곳이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이 근래 들어 흉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무참히 죽이는 일이 수차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성폭력 사건으로 불의의 죽음을 당한 사람도 있다. 희생된 이들은 그들이 단지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죽거나 다친다. 교통사고 같은 뜻밖의 사고 이외에도 오직 재수가 없어 죽는 일들이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사고 말고도 우리를 특히 슬프게 하는 일은 자라는 자식들과 함께 일가족이 자살해 죽는 일이다. 이른바 동반자살로 불렸던 일인데, 요즘은 어린 자식들은 어른의 잘못된 판단에 따라 원하지 않는 죽음을 맞게 되는 일이라 하여, 이를 ‘살인후자살’로 불러야 한다는 여론도 생긴 모양이다. 

죽는 사람이야 죽을만한 기막힌 사정이 있게 마련이겠지만, 하늘이 준 생명을 스스로 끊는 일은 어느 종교에서나 죄악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하물며 어린 자식이 자신의 죽음에 함께 해야 한다는 판단은 어떤 핑계로든 결코 정당화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식이 이 세상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그 수많은 시간을, 고난과 슬픔과 함께 겪을 그들 나름의 기쁨과 행복을 삽시간에 빼앗아 버리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부모 없이 모진 성장과정을 거칠 자식의 고난을 생각해 같이 죽자는 생각을 했다면, 그 자식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살아야 했던 것이 아닐까. 

얼마 전에는 고등학교 다니는 딸과 중학생 아들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번개탄을 차 안에 피워 죽게 한 후 자신도 자해했으나 죽지 않은 50대 아버지가 체포되었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있었다. 자식들은 죽게 했으나 자기는 차마 죽지 못한 기막힌 사연이라는 세평(世評)이 덧붙었다. 아무 의심없이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만 했을 그 착한 아이들이 눈에 밟히는 듯하다.

우리 현대시에도 이 아이들의 죽음이 간혹 보인다. 대개가 아이의 죽음을 마음 아파하고 가엾게 여기는 안타까움을 노래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정지용 시인의 시 「유리창」이다. 실제 어린 자식의 죽음을 소재로 쓴 시라 한다. 첫머리는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이고 마지막 부분은 ‘밤에 홀로 유리(琉璃)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山 새처럼 날아갔구나 !’이다. 유리창에 입김을 호 불면 무언가 불빛에 반짝이는 것이 나타나는 현상을 아이의 모습으로 생각하면서 이런 심정을 ‘외롭고도 황홀한’ 마음이라 표현하고 있다. 외로운 것은 아이가 죽고 없기 때문이겠고 황홀한 것은 유리창에 언듯 언듯 아이가 나타나는 것 같기에 드는 생각이겠다. 아이가 자기 곁을 떠난 것은 ‘산새처럼 날아갔다’고 표현하고 있다.

김광균 시인도 시 「은수저」를 통해 한 아이의 죽음을 가엾게 여기는 시를 썼다. 3연 중 1연만 소개한다.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기원전 4세기 무렵에 살았던 맹자는 사람의 성품이 원래 착하다는 일례로 어린 아이가 무심코 우물 곁으로 가 거기에 빠지려 하면 누구라도 달려가 아이를 구한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 곧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 했다. 오늘날 일부 폭력적인 사람들에게는 이 측은지심이 사라져버린 것일까.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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