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뉴스사천=정삼조 시인] 옛이야기에 만석꾼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부자가 되고 싶은 배고픈 사람들의 소망에서 이런 이야기가 생긴 것이리라. 다음 이야기도 만석꾼 이야기 중 하나다. 만석(萬石)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름과는 정반대로 아무리 애를 써도 가난하기만 하였다. 이 사람이 우연히 한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 그 까닭을 물었더니 이름을 고치면 될 것이라 하였다. 원래 만석복을 타고난 사람이나 다른 사람들이 만석아 만석아 불러 그 복이 다 없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즉시 이름을 바꿨더니 얼마 안 가 진짜 만석꾼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만석꾼 이야기는 일종의 금기(禁忌) 설화일 것 같다. 즉,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댓가로 고통을 겪는다는 이야기다. 그래선지 옛날 사람들은 이름에 신경을 많이 썼다. 분수에 넘치는 지나친 욕심이 깃든 이름을 피하고자 했다. 그래선지 김동인의 소설 「감자」에 나오는 지지리도 복 없는 여자 주인공의 이름은 ‘복녀(福女)’이다. 고종 임금이 태어나 아주 어렸을 때 불렸던 맨 처음 아명(兒名)은 ‘개똥’이었다고 한다. 좀 자란 뒤 ‘명복(命福)’이란 아명을 따로 받았다. 귀한 몸일수록 천한 이름으로 불러 혹시 모를 액운(厄運)을 물리치고자 했다는 사연도 함께 전한다. 

평민들이야 성(姓)이나 제대로 물려받았는지도 모르지만, 옛날 양반님네들은 이름을 여러 개 가졌다. 아이가 태어나면 당연히 이름을 지었지만 이 이름은 공식문서에서나 오르는 이름이었다. 어릴 때 부르는 이름은 앞에 말한 아명이라 하여 따로 있었다. 나이 스물에 가까워지면 관례를 올리고 부모나 스승이 새 이름을 지어주는데 그 이름을 ‘자(字)’라 하였다. 관례 이후로는 다른 사람들이 이 사람을 주로 이 ‘자(字)’로 불렀다. ‘호(號)’는 그 사람이 별도로 자기 이름을 따로 지어 부르든지 주위 다른 사람이 지어 주는 이름이다. 따라서 호는 여러 개일 수도 있다. 가장 호를 많이 썼다는 추사 김정희는 완당 등 호가 밝혀진 것만 해도 72개이고 아마 몇백 개를 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다른 호를 썼기 때문이라 한다.

근래에 생각해 보니 꼭 이름이 많다고 좋을 일은 아니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을 감사히 여기며 그 이름을 더럽혀 혹여 부모님께 누를 끼치는 일이나 삼갈 일이다. 거기에 꼭 욕심을 부린다면 인연 따라 제 분수에 맞는 호라도 하나 얻을 수 있다면 족하리란 생각도 든다.

근래에 서예나 한국화를 하시는 분들 위주로 작품 말미에 아호를 쓰는 게 일반화되었다. 아호도 자기를 드러내는 한 방편이기에 이것을 굳이 탓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왠지 좀 낯선 느낌도 들기는 했다.

평생을 글씨 쓰는 업에 종사하면서도 글씨가 아무리 봐도 악필이라 늦게사 서예 교실에 입문(入門)했더니, 뜻밖에 전시회를 해야 한다며 호(號)가 있어야 한다는 문제가 생겼다. 서예 교실의 성과물이 있어야 하고 글씨를 쓴 말미에 호가 들어간 이름을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없는 호가 갑자기 생길 리 없는데, 문득 얼마 전 이 서예교실에서 만난 한 지인이 지어준 호가 생각났다. 몸이 불편하신데도 불구하고 예술에 관심이 많아 우연히 문학 강의 시간에 뵙곤했던 분이다. 그분이 주신 아호는 ‘여해(如海)’였다. ‘바다 같다’면 만석이 이름처럼 이름이 너무 크다고 잊고 있었더니, 옆에서 바다를 닮아가라는 뜻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부추기는 바람에 갑자기 이름이 하나 더 생겼다. 몸조심 입조심해야 할 일이 또 생겼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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