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야화(野生野話)] 사남 연천마을

연천마을을 지키는 숲. 비보림 성격이 강하다. 경상남도 기념물로도 지정돼 있다.
연천마을을 지키는 숲. 비보림 성격이 강하다. 경상남도 기념물로도 지정돼 있다.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연천마을 숲에 들었다. 오랜 숲의 차분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게 뭘까? 이 숲은 풍수지리상 기운을 다스리는 비보숲이다. 마을에서 바라보는 동쪽 산은 솔개가 앉은 모습이다. 마을에는 부드러운 황토산이 있는데 솔개가 먹이로 삼고 덮칠 수 있다. 이때 솔개의 눈을 가려주는 것이 연천숲이다. 마을을 지켜주는 의미의 숲인 거지. 솔개내를 뜻하는 연천(鳶川)이란 마을의 이름도 여기서 가져왔단다. 자연·지리적 형상이 관계 맺는 의미를 조화롭게 다스린다는 것. 대단히 높은 수준의 우리네 철학이 아니든가?

또 다른 이야기는 마을 앞 돌산의 기운이 너무 강해서 이를 막기 위해 숲을 조성했단다. 흉하거나 넘치는 기운을 빼주는 엽승(厭勝)도 비보의 한 형태다. 연천숲은 의미로써 마을과 주민을 지켜온 가치가 드높은 마을숲이다. 오래된 뭔가가 숲에서 느껴진 이유였구나!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남도 기념물이 되었다. 솔개는 수리과의 맹금류로 예전에는 흔한 텃새였단다. 하지만 지금은 멸종위기종이 되었다.

살펴보듯이 연천숲은 분명한 목적을 갖고 만든 인공숲이다. 숲을 조성할 때 느티나무, 팽나무, 말채나무, 이팝나무 등을 심은 것이 확인되고 있다. 이 중에 이팝나무는 희귀식물에 속한다. 연천숲에는 커다란 이팝나무 두 그루가 보인다. 무척 반갑구나! 이팝나무에는 농사와 관련된 유래가 얽혀있다. 잎이나 꽃이 피어나는 상태를 보고 농사의 풍·흉년을 점쳤다. 남쪽 지방에서는 이팝나무 꽃이 필 때 논에 못자리를 한다. 이때 비가 잘 내려주면 꽃이 잘 피고 가물면 꽃이 잘 피지 못한다. 그러니 이팝나무 꽃이 잘 피는 해에는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었다. 예전에 마을숲의 나무는 기후를 예측하고 농사를 준비하는 천연 기상대였다. 

숲 아래론 손바닥만 한 들판이 펼쳐져 있고, 또 그 아래론 죽천천이 넘실대며 흐른다. 불어난 물에 마을 할머니 한 분이 빨래를 하고 있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냐! 예전에 빨래터는 흔한 마을 풍경이었지. 고된 삶의 한 부분이기도 했고. 하천 위로는 극성스러운 물까치가 날고, 조용조용 멧비둘기는 저만치 숲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물까치와 멧비둘기는 요즘 전국에서 개체 수가 많아진 조류들이란다. 잘 살펴볼 필요가 있겠구나.

원추리
원추리
메꽃
메꽃

마을 어느 집 앞 담장 너머로 원추리꽃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말갛게 피어난 노란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덩달아 마음이 환해진다. 길가에는 메꽃이 피어났다. 메꽃은 종일토록 피어있다가 저녁이 되면 꽃잎이 오므라든다. 아침 일찍 피었다가 오전에 오므라드는 나팔꽃과 다른 점이지. 그런데 메꽃은 열매를 맺지 않아 고자화(皷子花)라는 이름이 붙었다. 뿌리줄기가 번식의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지. 나팔꽃과 메꽃은 같은 메꽃과이지만 나팔꽃은 열매를 잘 맺는다. 메꽃과 달리 열매에 집중한 덕분이다. 자연에서 처음부터 정해진 것은 없다. 스스로 변해가는 것이지.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따라 전혀 새로운 종이 나오는 이유다. 

계요등
계요등
노루오줌
노루오줌

마을 담장에는 오종종한 덩굴식물 계요등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닭 오줌 냄새를 닮은 풀이다. 꽃술 안으로 아주 조그만 개미들이 연신 들락거린다. 중부지방 화단에도 나타난다고 하니, 이 작은 식물 하나에서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읽을 수 있겠다. 산자락에는 이제 밤 토리가 제법 커서 어엿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물도랑 가에는 노루오줌이 꼬리 같은 꽃을 곧추세웠다. 이름처럼 식물체에서 냄새가 난다. 하얀 꼬리가 아름다운 큰까치수염도 모닥모닥 피어났다. 늘어진 꽃차례가 개 꼬리 닮았다. 옛사람들은 식물 이름에다 동물을 곧잘 끌어 붙였다. 거기에 오줌 냄새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니. 그만큼 자연과 가까이 지냈다는 증거다. 오늘은 풀꽃 속에서 닭과 노루, 까치도 만나 봤구나! 동네 앞산에서는 희귀한 솔개가 내려다보고 있고.

큰까치수염
큰까치수염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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