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야화(野生野話)] 곤양 무고리

여덟 개의 나뭇가지로 힘차게 뻗어 올라간 이 느티나무가 무고마을의 당산나무이다.
여덟 개의 나뭇가지로 힘차게 뻗어 올라간 이 느티나무가 무고마을의 당산나무이다.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물고뱅이 마을에 마음이 이끌렸다. 호기심을 부르는 이름 탓이다. 예전에는 동네 이름으로 ‘물고뱅이’와 ‘무고’ 둘 다 함께 썼다고 한다. 물고뱅이는 물을 가두어 두는 곳에서 유래했단다. 무고는 말 그대로 무기 창고다.

무고 표지석
무고 표지석

무고리 신촌마을로 달려가 한자로 武庫(무고)라 적힌 커다란 바위 표지석 앞에 섰다. 이 표지석 하나로 탄탄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풍수지리적으로 곤양의 산세가 천군만마를 거느릴 천자가 나올만한 곳이라 하는구나! 그런데 이곳은 천자가 무기를 보관하는 무기고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래서 ‘무고리’가 된 것이지. 실제로 무고 지역은 남해안을 끼고 있는 곤양군의 군사적 요새였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무기고도 있었단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왜구들이 침략한 뒤 마을 이름을 무고(舞鼓)로 한자를 바꾸었다니! 군사적 요새를 북치고 춤추는 놀이판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武庫 표지석이 더욱 귀하게만 보인다.

음나무
음나무

어느 집 대문을 수호신처럼 지키고 선 장대한 음나무를 본다. 이 마을에는 음나무가 간간이 보인다. 대문간에 음나무를 심은 까닭은 무엇일까? 강하고 날카로운 가시가 악귀의 출입을 막아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지방 위에 음나무 가지를 걸어놓기도 했다. 예전에 이 나무로 육각형 노리개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채워주었는데 악귀를 막는 역할을 했단다. 이 노리개를 ‘음’이라 한 데서 음나무의 유래가 나왔단다. 음나무는 봄에 돋아나는 연한 잎을 장아찌나 나물로 먹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반찬을 제공하는 고마운 나무였던 거지. 그러니 일거양득인 셈이었지.

살구나무 열매
살구나무 열매

담장 안에 심은 살구나무에 노랗게 익은 살구가 툭툭 떨어져 내렸다. 싱싱한 걸 골라 두어 개 먹어보니 달콤하니 맛나다. 갈증을 덜어주고 기를 보하는 데 효과가 있단다. 쏠쏠하게 먹음직한 제철 과일이지만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다. 살구나무는 예전에 궁궐에서 즐겨 심었던 나무다. 오래전에 중국에서 건너왔다. 공자가 살구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친 사실은 워낙 잘 알려져 있다. 이 야외 교실을 살구나무 ‘행’자를 써서 행단(杏壇)이라 했다. 이게 우리나라로 넘어오면서 살구나무 대신 은행나무 행단으로 바뀌게 된 거지. 서원이나 향교에 은행나무가 많은 이유다.

나도밤나무
나도밤나무

마을 앞 들판을 지나 띠처럼 둘러선 벼랑길로 나가 보았다. 마치 마을의 외곽을 방어하는 성벽 같다. 벼랑 아래로는 물이 풍부한 개울이 흐른다. 이 북녘벼랑은 항상 습기를 머금어 식물 종이 다양한 것 같다. 천천히 식물들을 살펴보는 재미에 빠진다. 나도밤나무와 싸리류 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이 꿀맛 나는 식단을 온갖 곤충들이 모를 리가 없겠지. 개울가 가지를 늘어뜨린 고운 자태의 진달래는 아름다운 봄을 꽃피웠을 테고.

초록싸리
초록싸리

무고리 상평마을에 드니 세 그루 느티나무 정자가 무척 시원해 보인다. 보호수 한 그루와 두 그루 느티나무가 어우러져 커다란 숲을 이루고 있다. 안내판을 읽어보니 나무를 해치면 큰 병고를 입는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당산나무에서 매년 설·추석에 제사를 지내고 있단다.

참새
참새

숲 아래 들어서서 무더위를 식혀 본다. 무심코 바라보는 풍경! 조잘조잘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참새들이다. 통통통!!! 쪼그마한 귀요미들. 소소한 마음에 생기를 더하니 정겨운 풍경이로구나! 

당산 느티나무를 살펴보니 약 1~2m 높이에서 8개의 가지로 갈라져 있다. 보통은 외줄기로 굵은 몸통을 자랑하는데, 특이하다. 이 독특한 느티나무에서 군사들이 서로 모여 진을 치고 있는 모습을 연상한다. 안전을 담보하는 보호장치. 그래! ‘무고’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것은 아닐 테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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