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귀공자

영화 '귀공자' 홍보물
영화 '귀공자' 홍보물

[뉴스사천=배선한 시민기자] 세상에 가장 맛있는 음식이 먹어본 아는 맛이라는 말을 누가 처음 썼을까. 아는 맛이 무섭다는 이 진리에 가까운 말은 대리만족 콘텐츠인 ‘먹방’에서만 통용되는 게 아니다. 영화, 소설, 음악 등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이며, 이게 장르를 구분 짓는 가장 큰 이유다. 편하고 익숙한 것을 찾는 법이므로.

박훈정 감독의 영화도 그렇다. <신세계>의 강렬함과 <마녀>의 신선함을 맛본 이들은 그가 보여주는 또 다른 영화에 눈독을 들이다가 <브이아이피>같은 괴랄한 맛에 진저리를 치기도 하고 <마녀2>처럼 포장지만 바꾼 빤한 자기복제 맛에 고개를 젓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시 찾는 것은 익숙한 자극적인 맛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게 <귀공자>를 기다렸던 이유다.

감독이 주력하는 누아르라는 장르는 본래 대충 비슷한 법이다. 당연히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전작들과 비교할 숙명에 놓였으니, 변별점을 가지려면 더 재미있거나 완성도를 더 높이거나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귀공자>는 일단 특유의 유려한 색조는 여전하다. 푸른톤과 붉은 톤이 절묘하게 섞이는 지점에서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미장셴은 여전히 훌륭한데, 무언가 김빠진 뜨뜻미지근한 사이다를 마시는 기분이다. 추격 액션 특유의 속도감은 있지만 한방은 없고, 광기와 유머를 섞어놓은 블랙코미디도 묘하게 캐릭터와 섞이지 않는다. 

누구나 한 번쯤 일탈을 꿈꾸지만 주위의 시선이 걱정되니 평소의 드레스코드를 바꾸는 정도의 변화를 줘본다. 그런데 사람들은 전혀 몰라보고, 오히려 무슨 일 생겼냐며 되물어온다. 박훈정 감독도 같은 기분이었을까. 늘 하던 누아르에 피칠갑을 하고 코미디까지 더했는데 ‘대체 왜 이러세요,’ 상황이다. 자기복제라는 욕을 먹기 싫어 던져본 변화구일까, 아니면 새로운 투구 폼의 습득과정일까. 아무튼 스트라이크 존과는 백만 광년만큼 차이 나 보인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