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야화(野生野話)] 남양동~도암재

도암재 고갯마루는 사방팔방으로 등산로를 연결하는 맥점이다.
도암재 고갯마루는 사방팔방으로 등산로를 연결하는 맥점이다.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선선한 바람결을 느끼며 도암재로 향한다. 잠시 잠깐 남양동 임내숲에 들었다. 굵직한 몸통을 지닌 굴참나무와 해송이 달려 나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느티나무, 편백, 벚나무, 팽나무도 뒤를 따라 나온다. 이 숲은 대략 100년 전에 심어서 가꾼 마을숲이라 하는구나. 숲 한켠에 넓은 공터와 무대 공연장까지 갖추고 있다. 쉼터인 동시에 소통의 장으로 활용되는 마을숲인 거지. 우리 주변에 누워있는 것을 살아나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방생(放生) 아닐까?

숲에서 나와 마을을 벗어났다. 산비탈에 다양한 꽃들이 피어나 남양저수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인동덩굴은 호호 입술을 불고, 마삭줄은 하얀 팔랑개비를 돌리고, 기린초는 노란 별무리로 하늘을 바라보는구나.

마삭줄 꽃
마삭줄 꽃

인동덩굴은 밤에 나방이 꽃가루받이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섯 개의 수술 위로 둥그런 암술머리가 유난히도 튀어나와 있다. 아마도 꽃가루받이와 관련 있을 테다. 밤에는 낮보다 곤충이 귀하고 꽃가루받이도 그만큼 불리한 입장이다. 그러하니 암술머리는 고개를 내밀어 자신을 더욱 드러내야 하는 거지. 또 인동덩굴의 꽃은 하얗게 피었다가 노랗게 진다. 그래서 금은화(金銀花)라 부르기도 한다. 꽃색의 변화는 곤충을 위한 친절한 배려다. 찾아온 곤충이 꿀을 담고 있는 흰색 꽃으로 바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지.

인동초 꽃
인동초 꽃

금은화란 이름에는 유래가 있다. 옛날에 금화와 은화라는 아리따운 자매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열병을 앓아 목숨을 잃을 지경이 되었다. 자매는 죽어서도 열병을 치료하는 약초가 되기로 맹세했다. 자매가 죽은 뒤 무덤에서는 하얗고 노란 꽃이 피어났다. 사람들은 금화와 은화의 이름을 따서 금은화라 불러 주었다. 금은화는 열병을 다스리는 약초로 쓰이게 되었으니. 중국에서는 2002년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제로 유명세를 탔단다.

저수지 위로 오르니 외딴집 대문간에도 하얀 팔랑개비들이 돌고 있다. 덩굴 문지기로 기다려온 일 년의 세월! 어느덧 절정의 시간을 맞은 회오리바람이 전하는 말~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 나아가고 물러나며 기다릴 줄도 알아야겠지? 야산 길가에는 지난겨울 열매로 만나 본 멀구슬나무에 흐드러진 꽃이 피어났다. 이 꽃은 멀찌감치 두고 보아도 수수하게 전해오는 느낌이 있다. 실바람에 묻어오는 꽃향기에 느낌표를 더하니! 남녘의 한 계절이 뇌리에 새겨진다. 

멀구슬나무 꽃
멀구슬나무 꽃

등룡사에서 도암재까지 1.2km. 이제 거칠고 투박한 등산로다. 오르막길은 힘이 들지만, 정상에 오르면 산하의 마을도 발아래 있다. 그러나 이내 내리막길이 들이닥치니 오히려 조심할 때다. 이것이 짐을 지고 사는 우리네 인생길이겠거니. 오르락내리락하는 틈 사이에서 아픔도 기쁨도 허무도 뿌듯함도 모두 새옹지마 아니겠는가.

어느새 도암재 고갯마루에 올랐다. 사방팔방으로 등산로가 연결되는 맥점이다. 북으론 새섬봉이 올려다보이고, 남으론 상사바위 가는 방향이다. 펑퍼짐한 풀밭에는 엉겅퀴꽃들이 막 피어났다. 알알이 붉은 꽃송이 앞에 살며시 쪼그리고 앉았다. 작은 벌레 한 마리 부지런히 꽃술 사이에서 꿀을 찾고 있다. 보슬보슬 퍼져나가는 꽃송이를 위에서 바라본다. 연두 바탕에 붉은 물감을 던져 놓았구나. 이 물감은 정열의 붉음이 아니라 수수한 붉음이다, 꽃사슴의 눈망울을 닮은. 천태만상 자연의 빛깔에는 신비로운 감정이 있다. 딱히 표현하기 힘든 내면의 꼬물거림이랄까.

엉겅퀴 꽃
엉겅퀴 꽃

내려서는 길, 가까운 곳에서 딱다구리가 나무를 찍는 소리가 들린다. 발걸음을 멈추어 인기척이 끊기자 눈치를 챈 딱다구리도 조용해졌다. 잠시 잠깐의 정적! 가만히 지켜보자니 퍼드덕 날아간다. 바로 곁의 굵은 밤나무 둥치에서다. 자세히 보니 동그란 구멍이 나 있다. 숲속에는 온갖 생명의 긴장과 활력이 팽팽하구나! 그래 이게 바로 살아있는 거지.

밤나무 딱다구리 둥지
밤나무 딱다구리 둥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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