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N'과 함께] 이달의 인물 : 거북선마을 돌탑 달인(達人) 김재춘 씨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사천만 바다는 임진왜란 시기에 거북선이 처음 출전해 승리를 거둔 곳이다. 마침 올해 7월에 개봉한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은 이순신 장군이 이끈 한산대첩과 함께 이 ‘사천과 거북선’ 이야기를 자세히 담았다. 요즘 방문객으로 북적이는 거북선마을의 이름도 여기서 비롯했다. 거북선마을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여러 개의 돌탑이다. 주민들의 관심과 정성이 여느 바닷가와 다른 풍경을 만들어 놓았다. 그 중심에 있는 주민을 만났다.

자신이 만든 돌탑을 배경으로 선 용현면 거북선마을의 ‘돌탑 쌓기 달인’ 김재춘 씨.
자신이 만든 돌탑을 배경으로 선 용현면 거북선마을의 ‘돌탑 쌓기 달인’ 김재춘 씨.

자랑거리 많은 거북선마을
이야기 주인공보다 먼저 만나야 할 대상은 거북선마을이다. 이 마을은 2013년부터 2017년 사이에 용현 권역 단위 종합 정비사업이 진행되면서 생겨났다. 행정에서 바라보는 이름이라기보다 마을 지원사업 과정에 붙은 이름표 같은 개념이다. 용현면 주문리가 그 중심지다. 좁게는 주문마을에 있는 체험 센터(사천대교로 75-61)의 이름을 뜻하기도 한다.

이 거북선마을의 체험거리는 다양하다. 쏙 잡기를 비롯한 다양한 갯벌 체험이 가능하고, 딸기와 토마토 등 농장 체험도 가능하다. 캠핑 시설과 풋살장, 실내 교육시설 따위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일품이다. 날씨와 계절, 물때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 풍경에 노을이라도 붉게 물들라치면 탄성이 저절로 나올 정도다.

하지만 이런 풍경은 사천의 바닷가라면 흔할 일이다. 그래서였을까? 주문마을 주민들은 거북선마을에 예쁜 표정 하나를 더했다. 그게 바로 여러 개의 돌탑이다. 그 돌탑 탄생에 크게 이바지한 이가 이달의 인물 김재춘(1959년생) 씨다. 그는 추석이 훌쩍 지난 9월 16일 오후에도 거북선마을 앞 바닷가에서 작은 돌멩이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돌이 아주 크면 몰라도, 이렇게 작으면 제대로 붙어 있지 않습니더. 할 수 없이 시멘트를 쪼끔 쓰는 거지예. 파도에도 견디야 하고, 혹시라도 누가 만져서 부서지거나 넘어지모 안 됭께. 대신에 테두리에 아주 쪼끔만 씁니더.”

사다리에 올라서서 돌을 쌓던 김재춘 씨가 툭 내뱉듯 던진 말이다. 곁에 서서 시멘트 반죽이 든 대야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이 신경 쓰인 모양이다. 검붉게 그은 얼굴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돌, 시멘트 반죽, 사다리, 흙손. 돌탑을 쌓는 재료와 연장은 이게 전부였다. 설계도는커녕 대충의 모양으로 끄적거린 그림 한 장도 없는 채였다.

“모양요? 그기야 머릿속에 있지예. 설계도가 있으모 더 어렵겠지 않나 싶은데, 배운 적이 없으니까예. 모양을 잡는 데는 눈대중이면 됩니더. 몇 번 해보니까 감이 잡히더라고예. 전문적으로 배운 건 아니고, 그냥 재미 삼아 해본 겁니더. 처음엔 백천골에서 시작해서 와룡산 자락 곳곳에 몇 개를 만들어 봤지예.” 

돌탑을 쌓기 시작한 사연 많은 재춘 씨
‘재미 삼아’? 설명이 그럴듯하면서도 어색하게 들린다. 한창 일할 나이에 산과 계곡을 돌며 돌탑을 쌓는다는 건, 삶에 꽤 여유가 있거나 삶에 무척 찌들었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음료수 한 모금 하는 사이에 그 사연을 물으니, 그의 얼굴이 금세 굳었다. 대답은 한참 숨을 돌린 뒤에야 나왔다.

“제가 참 사연이 많습니더. 사업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몇 번이나 안 좋은 생각을 했다가, 그때마다 붙잡아 준 사람들이 있어서 이렇게 있는 기라예.”

김재춘 씨의 설명에 따르면, 그의 고향은 고성군 영현이다. 먼 타지에 살다가 실의와 절망에 빠져 사천에 온 게 2006년 무렵. 고향보다는 누님이 있는 사천이 더 낫겠다고 여겼다. 그리고 얼마간의 방황 끝에 정착한 곳이 주문마을이다. 이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정을 나누다 보니 새롭게 출발할 수 있었단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의 응어리가 때때로 자신을 괴롭혔다. 그럴 때마다 산과 계곡으로 들어가 그는 돌탑을 쌓았다.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서였다. 다만, 바닷가에 돌탑을 쌓은 것도 같은 이유였냐는 물음에는 크게 손사래를 쳤다.

“바닷가 돌탑은 성질이 전혀 다릅니더. 마을에 정비사업이 시작되고, 마을 앞 해안도로를 찾는 사람도 많아지고 하던 터에, ‘뭔가 볼거리가 하나 있으모 좋겠다’고 생각했지예. 아마 2015년쯤 됐을 겁니더. 처음엔 혼자서 바다 안에 쪼그만하게 만들었는데, 그때 만들었던 건 파도에 벌써 사라졌고예. 지금 남아 있는 건 마을에서 제안해서 좀 크게 만든 겁니더. 마을에서 트랙터로 돌도 모아주고, 돈도 일부 지원해줬으니까, 이거는 주민들이 다 같이 한 거지예.”

재춘 씨와 거북선마을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렇게 쌓은 돌탑이 어느덧 11개가 되었다. 지금 쌓는 것은 12개째. 해마다 2~3개씩 쌓고 있는 셈이다. 김재춘 씨는 외지인이나 방문객들이 돌탑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탑을 쌓고 있으면 칭찬이 쏟아집니더. 덕분에 좋은 사진을 찍고, 남긴다는 말도 해주고, ‘작가님’이라 불러주기도 하고예. 어떤 사람은 사진을 같이 찍자고도 합니더. 자기가 찍은 사진 중에 잘 나온 사진을 보내주기도 하는데, 그럴 땐 진짜 흐뭇~~하지예.”

반대로 신경 쓸 일도 가끔 생기는 모양이다. 예전엔 굿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을 말려야 했고, 요즘엔 ‘돌탑이 시야를 가린다’는 볼멘소리까지도 듣는다는 것. 그는 “마음 같아선 선착장까지 쭉 쌓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것 같다”며 푸념했다.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를 돌탑 쌓기로 버텨낸 김재춘 씨. 그는 앞으로도 마을과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살 생각이다. 그의 이런 마음은 정영애 거북선마을 운영위원장이 잘 헤아리고 있었다.

“김재춘 님은 마을에 없으면 안 될 분이죠. 늘 먼저 나서고, 몸으로 봉사하셔요. 주위에 잘 베푸시고요. 옥수수 농사를 지어 판매도 직접 하는데, 꽤 유명하시거든요! 덕분에 동네 주민들 것도 다 팔아주니까 너무 감사한 일이에요.”

김재춘 씨를 만나 이런저런 궁금증을 거의 다 풀어갈 즈음, 긴장과 경계심이 어느 정도 풀렸는지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이어 남은 삶에 관한 계획 한 자락도 들려줬다.

“지금은 좋습니더! 지나간 일들은 마음속에서 다 지웠고예. 남은 생에 하고 싶은 것도 있어예. 요즘 기타와 전자오르간을 조금씩 배우는데, 실력을 쌓아서 마을 주민들을 위한 공연을 해보고 싶습니더. 5톤 트럭에 음향시설을 잘 갖춰서, 이곳저곳 다녀보고도 싶어예. 그라고 돌탑도 더 멋지게 만들어야지예. 기회가 있다면 사천의 대표 명물로 만들어 보고 싶습니더!”

어느덧 돌탑 너머로 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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