靜(정). 20×15. 2020.
靜(정). 20×15. 2020.

계절이 바뀌는 풍경 속에서 지난봄 혹은 지난여름에 바라본 것이 이젠 늦가을이 되어 버렸다. 퇴색한 사진 속 풍경처럼 빛이 바랬다. 세상이 차분해져 버렸다.   

시간의 온통을 고속도로 위에서 보내고 있었다. 싫지가 않았다. 촉박한 일정이라도 일단은 고속도로 위에 차를 올리면 그때부터 마음이 한가해지고 평화로워진다. 마음이 놓였다. 어차피 이제부터는 샛길로 빠져서도 안 되고 다른 길이라는 게 없다. 오로지 정해진 목적지만이 있으니 나는 어떠한 고민이 없다. 온몸에 곤두서고 있던 날카로움이 해제된다. 휴~ 낮은 신음과 함께 어깨에 힘이 빠진다. 이젠 됐다라고 심장이 위로한다. 복잡하게 얽혀있던 실타래 같은 길들이 한 길로 정리가 되었다. 그래서 고속도로를 달릴 때 행복해졌다.  

고속도로의 표지판이 산청 함양 대전 서울을 보여주고 문산 창원 대구 부산을, 때로는 남해 하동 순천을 보여준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운전대를 잡았으니 그곳으로 달릴까 하는 충동이 잠시 일었다. 그저 피식하고 웃고는 가던 길을 달렸다. 

마음이 급할 때야 추월선을 오가며 속도감을 느끼지만 웬만하면 주행선으로 빠져나온다. 이때가 가장 사치스러운 시간이다. 차 안에서 라디오나 음악을 듣고 싶지 않았다. 작은 공간 안은 오롯이 나여야만 했다. 누구도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자동차 바닥소음만이 고요를 방해할 뿐이다. 그 공간 안에서 머릿속 그림을 그린다. 그동안 묻어둔 감정까지 꺼내며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하필 이때 친정아버지와 함께 하는 가족카톡방이 열렸다. 카톡 카톡... 카톡 카톡... 계속 울려대는 카톡 소리에 조심스럽게 사진 한 장을 찍어서 보냈더니, 더 이상 어떠한 카톡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조용............................

도착지에서 차를 멈추고 가족 카톡방을 열어보니, 앞과 양옆으로 대형트럭들을 끼고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고 있는 사진 한 장만이 덩그러니 마지막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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