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앞 곤양쉼터에···14일 제막식 열려
사천 최초 ‘만세운동’ 의미 되새겨
‘자체 모금’ 등 곤양면민 주도 제작

8월 14일 곤양면 기미년 독립의거 기념비 앞에서 행사 참가자들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
8월 14일 곤양면 기미년 독립의거 기념비 앞에서 행사 참가자들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

[뉴스사천=고해린 기자] 1919년 3월 13일, 일제에 억눌렸던 국권을 회복하려는 함성이 사천 곤양면에서 횃불처럼 피어올랐다. 곤양면 송전리 출신의 김진곤(金鎭坤‧1980)은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이에 호응해 만세운동을 계획했다. 김진곤과 송전리 청년 4명은 거사 당일인 13일 ‘대한독립만세(大韓獨立萬歲)’라고 쓴 깃발을 곤양 헌병주재소에 던진 뒤 학생‧주민들과 만세를 외쳤다. 

그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4월 6일과 19일에도 장날에 모인 사람들과 힘을 합쳐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곤양의거의 주축이었던 김진곤은 사천헌병분대에 붙잡혀 징역 6월의 모진 옥고를 치렀다.  

이로부터 101년 뒤, 광복절 75주년을 하루 앞두고 곤양면에서 이를 기리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곤양기미년독립의거기념비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조복래, 줄여 기념비추진위)는 8월 14일 오전 11시 곤양 시장 앞 곤양쉼터에서 ‘곤양면 기미년 독립 의거 기념비’ 제막식을 가졌다. 

시비는 곤양쉼터 잔디밭에 세워졌다. 이날 행사에는 기념비추진위 관계자와, 지역 주민, 송도근 시장, 하영제 국회의원, 이삼수 시의회 의장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경과보고, 기념사, 축사, 기념비 제막, 대한독립만세 삼창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조복래 기념비추진위원장이 기념비 앞에서 곤양의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복래 기념비추진위원장이 기념비 앞에서 곤양의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기념비 건립은 곤양면민들의 안타까움이 모여 시작됐다. 곤양의거는 사천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만세운동으로, 진주의거보다 5일, 사천읍의거보다 8일 빨랐다. 또한 곤양의거 이후 인근 지역으로 만세운동이 빠르게 번져나갔다는 점에서 서부경남 만세운동의 효시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지역 만세운동의 출발점인 곤양에 이를 기리는 기념비가 없어 면민들의 아쉬움이 큰 상황이었다. 

이에 곤양면민들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지난해 3월 기념비 건립에 뜻을 모았다. 기념비는 올해 2월에 완성됐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제막식이 연기됐다. 추진위는 제막식 시기를 고민하던 중 올해 광복절을 넘기면 의미가 퇴색된다고 판단해, 8월 14일 제막식을 열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기념비 건립의 전 과정이 곤양면민들의 주도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곤양면민들은 기념비추진위를 구성하고, 1년여 동안 기념비 건립을 추진해왔다. 특히 곤양면 25개 자생단체협의회와 30개 마을 이장단을 중심으로 자체 모금을 진행했다. 모금 결과, 300여 명의 곤양면민들이 동참해 약 4000만 원을 모았다.  

조복래 기념비추진위원장은 “기념비 건립에 동참해 주신 면민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곤양면 기미년 독립 의거 기념비를 보며 면민들이 자긍심을 갖고, 독립운동을 펼친 곤양 사람들의 용기와 희생정신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곤양쉼터에 세워진 곤양면 기미년 독립 의거 기념비.
곤양쉼터에 세워진 곤양면 기미년 독립 의거 기념비.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