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곡차곡. 15×15. 2019.

눈을 반쯤 뜨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빈둥거리며 누워있는 편이 아니라 곧장 씻을 준비를 하고 수건을 꺼내려 드레스 룸 문을 열었다. 테이블 위에는 각을 잡아 개어놓은 알록달록한 수십 장의 수건이 두 줄로 나란히 쌓여있다. 정신없이 열었다가 처음으로 정신이 번쩍 드는 아침의 첫 풍경이다. 

세탁은 남편의 몫이라 나는 세탁기 사용법을 잘 모른다. 굳이 한다면야 하겠지만 은 내가 세탁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검정 옷과 흰옷을 함께 넣어 세탁기를 돌려 검정 보풀을 떼어 내느라 어지간히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했다. 한 번의 실수로 나는 세탁기 접근금지가 되어졌다. 남편은 자기 방식대로 분류해서 세탁을 하고 싶어 한다. 세제도 샤프란 외에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들로 우리 집 세탁실에 즐비하다. 마트 쇼핑을 가는 나에게 남편이 “다우니 하나만 사다 줘” 하기에 “그게 뭐야? 여자아이 이름이야?” 했다가 크게 웃었던 적이 있었다. 남편은 세제를 사 모으는 취미가 있는지 도무지 용도를 모르는 세제가 많았으며 화장지처럼 차곡차곡 쌓여진 세제들을 보며 흐뭇해했다. 세제를 충분히 풀어 세탁기에 수건들을 모아 돌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난 더더욱 세탁실 쪽으로는 발길이 끊어져 버렸다. 

남편은 수건을 4등분을 하고 다시 반을 접는다. 난 3등분을 하고 그대로 쌓아 놓는 걸 좋아한다. 한 번은 눈앞에 방금 걷어 놓은 수건들이 보이기에 일을 덜어주려 3등분 하여 열심히 개어 놓았다. 얼마 뒤 수건을 꺼내려고 보니 다시 4등분에 반으로 접어져 있었다. 남의 영역은 절대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알아 버렸다. 

수건을 올려다보며 피식하고 웃어지는 것이 알록달록 색깔이 참 예쁘게 쌓여 있구나 하고 여기면서 내가 특히 싫어하는 느낌의 수건이 중간중간에 있는 것을 보고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고 있었다. 욕실에 들어가는 순서를 계산하며 중간을 억지로 빼지 않아도 될 것인지를 세고 있다. 난 새 수건 느낌의 면실이 그대로 살아있는 촉감을 싫어하고 두꺼운 수건이 살갗에 닿는 게 싫었다. 얇고 가벼운 수건이 좋고 초록 계열의 수건을 좋아한다. 내가 사용할 차례쯤의 수건이 무얼까 하나하나 세어보고 있었다.  
예쁘게 개어진 수건을 보며 시작하는 아침은 행복하다. 쌓인 수건이 낮으면 요즘 많이 바쁜가보다 싶다가 높이 쌓여진 수건을 보면 오히려 여유로웠을 어제를 생각했다. 수건 높이가 굳이 문자를 주고받지 않아도 가족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니 분명 TV를 보며 앵무새 막둥이를 어깨에 올려놓고선 수건이 한 장씩 개어지는 기쁨을 느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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